
“어, 진짜 되네. 어디 한번 보자.”
지난 7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전철 안.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세 명이 휴대폰으로 TV가 나오자 신기한 듯 큰 소리를 낸다. 옆에 앉은 아저씨도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학생들 뒤에 붙은 광고판에는 ‘월 1만3000원이면 지금 이 자리에서 켜지는 37개 채널을 볼 수 있습니다’라는 위성DMB 광고가 눈에 띈다.
대학생 이정훈씨(22)는 “통화료를 절반 정도 줄인다는 각오로 위성DMB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말한다.
서울교대역을 지나자 이번엔 여고생 4명이 카메라폰을 들고 연신 플래시를 터트린다. 사진을 찍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뭐가 재미있는지 서로 깔깔거리며 웃는다. 대각선 건너편에선 대학생으로 보이는 또 다른 여학생이 MP3를 듣는 듯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순환열차가 왕십리역에 다다르자 퇴근시간이 시작되면서 열차가 더욱 붐빈다. 사람을 헤치고 열차 마지막칸에 다다르자 한 직장인이 벽에 기댄 채 휴대형 게임기 PSP를 들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회사원 이광섭씨(31)는 “외근이 잦아 한 대 구입했는데, 지하철에서 게임을 즐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자랑한다.
MP3P, 카메라폰, DMB폰, PMP, 게임기 등 휴대형 가전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지하철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신문이나 책에 의지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던 풍경이 이젠 TV를 보거나, 게임이나 음악을 즐기거나, 때로는 사진까지 찍는 다소 역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지하철 개통 때부터 지하철공사에 근무해온 강선희 보도과장(52)은 “콩자루를 출입문 근처나 좌석 앞에 두고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생생한데, 어느 순간 신문이 열차 안을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젠 휴대폰이며 MP3P가 넘쳐난다”며 “최근에는 출근 땐 무료신문을 보고, 퇴근시간엔 휴대폰 게임이나 TV를 보는 등 시간대별 열차 안 풍경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위성DMB방송을 서비스중인 티유미디어에 따르면 지하철에 퇴근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오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시청률이 최고 45%까지 올라가며 ‘프라임타임’을 기록하고 있다.
휴대가전이 넘쳐나면서 지하철 유실물 세태도 변화하고 있다. 지하철공사 집계에 따르면 휴대폰이나 MP3P, 디지털카메라 등이 주종을 이루는 전자제품의 경우 서울 지하철 1∼4호선에서만 2002년 5240건에서 2003년 4328건, 2004년 3901건으로 가방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하철 풍속도의 변화는 개인화와 휴대화가 특징인 뉴미디어가 잇따라 탄생하면서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라며 “휴대폰이 유선전화를 대체해 나갔듯이 DMB단말기가 거실 TV의 시청률을 앗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중인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1분기 지상파DMB 수신을 위한 중계기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출퇴근 시간에 신문 대신 TV 뉴스를 보는 세상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