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한국판 `불의 날개`는 어디에

 슬픈 자화상이다. 기대가 컸던 탓인가. 참담함과 혼란에 빠진 이가 많다. 머문 듯하다가 가는 세월도 밉지만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조작으로 바뀌고 이 나라 최고 과학자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무섭다는 걸 절감한다. 특정인의 추락 못지않게 그 기술에 희망을 가졌던 이들의 좌절과 실망감은 무엇으로 보상해야 하나. 말로 될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희망의 꽃씨를 보여 줘야 한다.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게 세월이라고 한다. 똑같은 세월이건만 활용하는 이에 따라 그 가치는 천지차이가 난다. 과학이란 게 무엇인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고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던 황우석 교수가 나락에 떨어진 것이 그만의 책임인가. 일차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정부나 언론은 책임이 없는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황우석 보도에 경쟁적으로 앞장섰던 언론은 그동안 무얼 했나. 언론이 사전에 경고음을 내보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다. 정부도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냉철하고 치밀하게 대응했더라면 국가 망신을 안 당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네탓 하기보다 내탓을 해야 한다.

 황 교수도 인간이다. 바람직하기는 그가 학자적 양심을 고수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명예와 대규모 지원에 걸맞은 성과를 조기에 내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도 정책적 성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 경위야 어찌됐건 지금 정부나 과학기술계는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하지만 누가 뭐래도 한국이 오늘날 IT강국이니 수출강국이니 할 수 있게 된 것은 과학기술자들의 덕분이다. 연구실에서 ‘월화수목금금’하면서 땀 흘린 덕분에 산업화를 거쳐 지식정보화사회를 구현한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의 땀과 노력이 부국의 원동력이 됐다. 이제 우리는 황우석 교수 사태를 거울삼아 과학자들이 다시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나타난 문제점은 정비하면 될 터다. 그리하여 앞으로 나라를 먹여 살릴 과기계 스타를 배출해야 한다. 인도를 보자. SW 강국인 인도 대통령은 압둘 칼람이란 과학기술자다. 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그는 연구원 생활을 시작으로 국방개발연구소장, 국가최고과학자문회의 등을 거치면서 인도 최초로 위성과 미사일 발사를 성공한 인물이다. 2001년 과학자문회의를 은퇴하자 이듬해 7월 인도 주의회 의원의 90% 이상이 그를 대통령으로 지지했다. 국내에도 소개된 ‘불의 날개’는 그의 자서전이다. 그가 자문회의에서 은퇴할 때 인도는 최고급 빌라를 제공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오래 전부터 살던 방 한칸짜리 집으로 돌아갔다. 재산이란 미래에 대한 꿈과 단칸방의 책상 하나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청렴하게 살면서 인도를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끌었다. 인도는 과학기술의 상징이자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는 “과학은 열정이며 전망과 가능성을 향한 끝없는 항해다. 실수란 불가피하다. 날마다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실수를 통해 수정되고 향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도 젊은이들은 그를 통해 조국애와 청렴함을 배우고 인도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그는 또 “대형 프로젝트는 산과 같다. 평정의 상태로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신은 어려움과 더불어 성장의 기회도 준다고 한다. 황우석 교수에 대해 아쉬움과 비판이 많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 사태를 통해 우리는 더 큰 과학기술의 씨앗을 품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한국판 ‘불의 날개’를 기대하며 과학자들은 길을 떠나야 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