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의 대명사로 부상한 휴대이동방송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높다. 휴대폰 시장이 유럽식(GSM)과 북미식(CDMA)으로 나뉜 것처럼 휴대이동방송 역시 기술적으로 노키아식(DVH-B), 퀄컴식(미디어 플로), 한국식(지상파DMB)의 3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DMB를 휴대폰의 명성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찜해 놓았을 정도다. 방송법 등을 통해 서비스 내용과 사업자를 엄격히 규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DMB폰 유통에 소극적이던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주무부처 장관의 으름장에 태도를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요즘 DMB폰은 50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한다.
하지만 DMB가 너무 빨리 자리잡은 것을 시샘하는 걸까. 요즘 DMB 아성을 일거에 무너뜨릴 신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호사가들이 난리다. 미국의 벤처기업 슬링미디어가 내놓은 ‘슬링박스’가 그것이다.
슬링박스는 집안의 TV나 케이블 방송을 휴대 단말기를 통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가정용 라우터(중계기)다. 당연히 TV 등에 접속할 AV단자와 인터넷에 연결할 이더넷단자가 갖춰져 있다. 그래서 휴대폰이나 와이브로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든 무선랜(인터넷)에 접속해 TV 뉴스와 개인녹화장치(PVR)의 콘텐츠 등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슬링박스가 휴대이동방송의 기능을 흡수할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다.
슬링박스는 법으로 규정해 놓은 지상파와 케이블TV의 ‘방송권역’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예컨대 수도권으로 제한한 SBS를 부산이나 광주에서 얼마든지 시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조만간 있을 지역 DMB사업자 선정작업도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당장 슬링박스가 휴대이동방송을 무력화하기에는 아직 기술적 보완 사항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통·방융합이니, 방·통융합이니 하여 내홍을 겪는 우리에게 슬링박스의 등장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아무리 잘 짜여진 제도나 정책도 기술발전의 속도나 흐름을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슬링박스에 대한 교훈이 유익한 참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