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초일류를 위한 삼성-­하이닉스의 ‘결단’

[특별기고]초일류를 위한 삼성-­하이닉스의 ‘결단’

 얼마 전 종영한 역사드라마 ‘이산’이 인기였다. 조선 후기 한국판 르네상스를 이루어 낸 정조의 인간적 면모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잘 조화시켜 재미를 더한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붕당정치’가 조선을 얼마나 깊은 쇠락의 길로 몰아갔는지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정조 이후 심화한 정쟁은 ‘세도정치’로 치달았다. 그 결과 조선조는 외세 열강들에 굴복함으로써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내부의 적을 외부의 적보다 더 적대시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은 안타까운 역사의 한 대목이다.

 우리 산업을 총괄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어서인지 드라마를 볼 때에도 산업계의 현실을 드라마 속 내용과 곧잘 견주게 된다. 혹시 우리 산업계도 내부 경쟁자를 견제하다가 외부의 적에게 종속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업계의 경쟁문화는 바람직한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주력 산업의 내부적 견제가 지나치지 않았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전자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세계 유수의 기업과 수많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그러나 정작 두 회사 간 제휴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사업 부문이 겹쳐 협력 효과가 없다’는 게 이유였지만 서로 견제와 경쟁이 지나쳐 협력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을까.

 국내 대기업 간의 전략적 협력은 학계·연구계 전문가, 그리고 중소 협력업체들이 손꼽는 가장 ‘뜨거운 감자’다. 국내 기업이 세계 1, 2위를 하면서도 세계시장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 기업들끼리 서로 등을 돌린 채 오히려 외국 경쟁사와 협력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내 업체 간의 ‘강자 연합’을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지난 25일 우리 반도체 업계 CEO들은 먼저 대기업부터 ‘기술협력’의 물꼬를 트기로 합의했다. 합의 내용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오는 9월부터 차세대 메모리 소자 공동 개발에 착수하기로 했다. 차세대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국제 표준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취약한 장비·재료산업에 대해 기술지원도 확대했다. 반도체 대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상생협력이 업계의 자발적 선택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 ‘수직적 협력’이라면 대기업 간의 협력은 ‘수평적 협력’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수직-수평 협력이 잘 짜일 때 상생의 힘은 배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포괄적 기술 협력은 우리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우리 반도체 업계가 마침내 기술협력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로 많은 이해와 양보가 있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누가 봐도 ‘과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구나’ 할 정도로 적극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정부도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 해외시장 개척 등을 적극 지원하며 업계와 함께 뛸 것이다.

 우리 반도체 업계의 움직임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경쟁구도에서 한국의 위상을 새롭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 반도체 산업 역사상 처음 추진하는 ‘표준화 전략’은 미래 반도체 시장을 창출하는 중요한 시도인만큼,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결단은 최근의 불황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이 부동의 1인자 위치를 확고히 굳히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우연히도 58주기를 맞은 ‘6·25’에 합의한 우리 반도체 업계의 협력 의지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생산사(團生散死)’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제1차관 chemin@mk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