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인터넷](3)기업 규제의 딜레마…산업이 신음한다

[新 인터넷](3)기업 규제의 딜레마…산업이 신음한다

 미래 2010년 3월, 유명 프랜차이즈 외식 업체의 쇠고기 원산지 허위 표시 기사가 포털 뉴스에 게재된다. 미국산을 호주산으로, 호주산을 국산으로 속인 것이다. 기사를 확인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포털의 뉴스 댓글과 게시물에는 업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난무했다. 해당 업체는 ‘명예훼손’을 무기삼아 포털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했다. 포털은 시간당 수백건씩 올라오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일일이 삭제했다. 정통망법상 삭제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성 댓글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설적인 비판이 함께 담긴 게시물까지 삭제됐다. 법망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포털이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댓글은 자의적인 판단 기준에 의해 걸러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이 삭제된 데 대해 네티즌은 포털 사업자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 해당 외식 업체는 비난 여론이 인터넷에서 확산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될 개정 정보통신망(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법안이 통과돼 시행되면 당장 내년에라도 발생할 개연성이 큰 사례다. 포털 사업자의 악성 게시물 차단 의무 불이행 시 처벌 조항 때문이다. 명예훼손 등 인터넷상의 사이버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위법을 한 행위자보다 게시글을 실은 인터넷 기업에 부과한 이 같은 과도한 책임은 고의적 조작이나 악용을 낳을 소지가 크다. 시장 기능에 의해 정화되기보다는 포털이 자의적인 판단을 하게 함으로써 부작용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터넷기업협회 측은 “인터넷 사업자의 서비스 자체를 다루는 과도한 규제가 어뷰징(악용)을 낳고 어뷰징 행위를 막기 위한 또 다른 규제가 필요해지는 악순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 불거진 인터넷 실명제, 불법 유해 정보 모니터링 및 삭제 의무화 등 규제 법안을 따르기 위한 규제비용도 덩달아 커진다.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 기업은 경영 환경이 극도로 악화돼 결국 ‘대형 포털 권력화 재생산’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규제→악용→규제…’ 우려 높아져=현행 정보통신망법 44조에는 ‘포털은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나 피해자의 요청이 없더라도 관련 글을 삭제하거나 임시조치 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난 22일 임시조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포털 업계는 “사법 경찰권을 인터넷 사업자에 부여하는 것으로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한 게시물 삭제 행위가 남발될 것”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어떤 게시물을 차단·삭제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반 기업이나 사용자의 고의적 악용도 점쳐진다. 최근 발의된 ‘검색서비스사업자법안(김영선 의원 대표 발의)’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된다면 포털은 인기 검색어 기준을 공표하거나 검색 알고리듬을 공개해야 한다. 기업 비즈니스 노하우가 공개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홍보성 콘텐츠를 검색 결과 상위에 올리려는 행위가 빈발해지고 또다시 이를 막기 위한 규제가 만들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달콤한 기업규제, 시장은 죽는다=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 인터넷 기업이 불법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직접 유발하지는 않지만 △영향력이 너무 커졌고 △유통 및 배포에 대한 책임은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규제 방식이다. 정부 규제나 사전 규제, 법적 규제가 과도하면 시장이 위축된다.

 증권가에서 우려가 먼저 터져나왔다. 박재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김영선 의원이 최근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면 인터넷 산업의 경쟁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굿모닝신한증권도 23일 발간한 데일리 리포트에서 “최근 규제에 따라 인터넷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과 정책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규제 이슈가 터진 이후 인터넷 관련 주가도 요동치고 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행위자 개개인을 규제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규제기관 쪽에서는 기업을 규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우리만 죽는다”=이 같은 규제가 되레 중소 사업자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 대응에는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형 포털은 현행 정부 규제를 따르는 데 수백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나마 여력이 된다. 그러나 블로그·SNS·UCC 사업자 등 체질이 허약한 중소 인터넷 기업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한 중소 인터넷 기업 CEO는 “수십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하더라도 완벽한 모니터링이 불가능한데 이는 고스란히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포털에 맞서 서비스 경쟁을 벌이기는 요원한 일이다. 특히 개정 정통망법에 따라 실명제가 전면 시행되면 더욱 서비스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판도라TV 등 일부 사업자가 모니터링 인력을 해외에 아웃소싱하는 고육책을 쓰고 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규제에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인터뷰>어느 중소 인터넷 사업자의 애로-신동헌 엠군미디어 사장

 “대형 포털과 맞서기 위해서는 콘텐츠 개발, 마케팅, 저작권 확보 등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되레 정부 규제를 따르기 위한 시스템 변경 및 모니터링 인력 확충에 그 자금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만 하는 게 현실이죠. 사업할 맛 안 납니다.”

 중소 UCC 업체인 엠군미디어 신동헌 사장은 최근 1년 동안 불거진 규제에 대해 이런저런 속앓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대형 포털에 초점을 맞춘 각종 기업 규제에 중소 인터넷 벤처들도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에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새 정부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경제 활성화를 약속했지만 유독 인터넷 산업에 대해서만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콘텐츠 내용 규제도 중소 기업에는 ‘이중고’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불법 유해 콘텐츠 모니터링 인력 충원을 위한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 완벽한 모니터링은 사실상 불가능해 적발되면 벌금까지 내야 한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리스크는 줄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신 사장은 “네이버나 다음 등 대형 포털은 이미 기존 조직이 다 갖춰져 있고 심지어 자회사까지 두고 있다”며 “동영상은 모니터링 솔루션들이 나와 있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도 않고 2∼3분 분량의 아무리 짧은 UCC라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 준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다가 국내 중소 인터넷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거나 신생기업이 아예 시장에 발도 못 붙이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신 사장이 인터넷을 모두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사업을 하는 저도 댓글에 상처받을 때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특정 콘텐츠를 보면 정말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며 “하지만 인터넷은 통제가 통하는 구역이 아니라는 것을 10년 가까이 인터넷 산업에 몸 담으면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회의 건전성을 끌어올리는 진지한 노력과 남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기본’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 됐다.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라고 사업자가 부추긴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부추길 이유도 없고….” 사무실을 나오는 길, 신 사장이 등 뒤에서 남긴 흐린 말 끝이 긴 여운을 남겼다.

<박스>기업 자율 책임 강화하되 면책도 활성화해야

 “만약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의약품 정보를 보고 복용하다 사고가 난다면 누구 책임입니까.”

 “위키피디아는 사용자들이 만든 커뮤니티입니다. 따라서 절대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미리 고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위키피디아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의 공통점입니다.”

 지난 4월 25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위키피디아 창립자 지미 웨일스 인터뷰 기사 가운데 일부다. 지미 웨일스가 잘못된 정보 유통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는 ‘통신품위법(CDA)’이 있기 때문이다. 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시장 자율경쟁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인터넷서비스기업(ISP)에 대한 면책규정을 명시했다.

 일명 ‘착한 사마리아 조항’이라 불리는 이 규정은 자체 생산하지 않는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ISP에 묻지 않으며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면 명예훼손 등의 불법행위 문제에도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다.

 황성기 한양대 법대 교수는 “인터넷에 대한 수많은 불법정보의 책임을 서비스 제공업체에 물으면 해당 기업은 유통되는 게시물들을 제한하는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시장 위축을 불러온다”며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면책규정을 상당히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온라인서비스법’에 따르면 ISP는 상시적인 모니터링을 할 의무가 없으며, 문제 발생 시 인지 가능성과 기술적 가능성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에만 규제를 받는다. 일본도 2002년 ‘특정전기통신역무제공자의 손해배상 책임의 제한 및 발신자 정보의 개시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마련한 이후 사업자의 면책 요건을 점점 강화하는 추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면책규정에 상당히 ‘인색’하며 규정도 모호한 편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44조 2항에 따르면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경우, 인터넷기업이 필요한 조치를 한 경우 면제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저작권법도 저작권 침해 사실을 인터넷 기업이 알고 복제·전송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킨 경우 책임 감면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면책 적용 범위가 제한적(저작권·사생활 침해·명예훼손·통신판매 중개만 해당)이고 △민법 일반법리에 따라 사업자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불법 행위자에 대한 책임 제한 규정이 없는 등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옛 정통부가 마련한 ‘포털의 사회적책임 제고 방안 TF’에 참여했던 최경진 경원대 법대 교수는 “자율규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이를 이행했을 때 면책규정을 제대로 적용해야만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임시조치로 인한 무분별한 게시물 삭제 등의 어뷰징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선에서 면책 규정을 절차화하는 등의 단계화·세분화·체계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