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에 공적자금을 합법적으로 투입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달부터 일본 전자업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금난을 덜 수 있게 됐다. 법안 마련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일본 반도체 업계다.
과거 하이닉스반도체의 사례에서 처럼 금융권의 자발적 지원도 정부의 부당한 지원이라며 딴지를 걸었던 일본이 공적자금 투입의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그 자체가 굴욕이다. 뿐만 아니라 훗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논란이 될 수 있다.
22일 일본 언론은 일반 기업에 공적자금 투입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이하 산업재생법)의 개정안이 참의원 경제산업위원회에서 전원 일치로 가결됐다고 전했다. 산업재생법 개정안의 골자는 일본 정책투자은행이 일시적인 실적부진에 빠진 일본 기업에 자본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법은 이 날 참의원본회의에 상정돼 각의 결정과정을 거친 후 오는 30일부터 시행된다. 일본 정부는 사업재편을 적극 추진 중인 전기·전자업체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들 기업의 유동성 위기 해소에 나설 계획이다.
개정된 산업재생법의 1차 수혜자로 거론되는 기업은 일본 최대의 비메모리 전문기업 르네사스테크놀로지의 대주주인 히타치제작소를 비롯해 르네사스테크놀로지와 경영통합을 추진 중인 NEC일렉트로닉스, 메모리 가격 폭락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세계 3위 메모리 업체 엘피다메모리 등이다.
히타치제작소의 경우 르네사스테크놀로지 운영 및 NEC일렉트로닉스 경영 통합 등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개정된 산업재생법을 활용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다. 엘피다메모리는 대만의 메모리 통합법인인 타이완메모리(TMC)와 자본 및 업무제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500억엔 규모의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한 바 있어 산업재생법의 또다른 수혜자로 거론된다.
3월 결산에서 적자전환이 확실시되는 도시바 역시 5000억엔 규모의 추가 자본 확충을 위해 산업재생법 활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전세계적인 판매량 급감으로 자금난에 빠진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산업재생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영 부진에 빠진 AV 대기업 파이어니어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지원하기로 하고, 300억엔 가량을 출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도 산업재생법이 적용된다. 일본 내에서만 1만여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파이어니어가 파산할 경우 경제 전반에 끼칠 충격을 우려해 정부가 사전조치를 취하는 셈이다.
일본내에서도 정부의 민간기업 공적자금 투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파탄을 막기 위해 이례적으로 자본투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기업들의 경영위기 극복 자구노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될 경우 정부 의존도 증가에 따른 부작용이 훗날 부메랑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