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인터넷·게임 막을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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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칼럼] 인터넷·게임 막을 수 없다면

 올해 다섯 살인 막내는 요즘 ‘배고프다’ ‘밥 달라’는 말보다 “감히 날 굶겨? 복수할거야∼”라는 말로 까불댄다. 놀고 싶을 때는 “나랑 안 놀아줘? 복수할거야∼” 이런 식이다. 최근 종방한 TV드라마를 패러디한 개그 프로그램을 몇 번 보더니 입에 붙었나 보다. 이 녀석이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는 최근 들어본 장기하의 ‘싸구려커피’다. “미지근해 속이 적잖이 쓰려온다”는 가사를 읊조리며 어슬렁거릴 때는 어이가 없어 슬며시 웃음까지 난다.

 웃음 끝이 꼭 편한 건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대중 미디어와 콘텐츠 노출이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수용태도에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할지 매번 고민스럽다. 살짝 노출되는 단편적인 드라마나 음악도 이럴진대 틈만 나면 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게임이나 인터넷은 어떨까 싶다.

 부모된 마음은 자녀에게 늘 좋은 얘기, 모범적인 삶,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 순도 100%의 그런 청정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서 아무리 바람직한 환경으로 감싸준다 해도 친구들의 거친 말 한마디, 노래 한 자락에 공든 탑은 허물어진다. 부모가 아무리 막아도 친구 집 컴퓨터, 사촌형의 게임기, PC방 등등 아이들이 게임과 인터넷을 접할 공간과 도구는 넘쳐난다.

 기성 세대의 우려는 올해도 ‘게임 셧다운제’ 같은 규제안을 불러왔다. 지난달 국회에 제출된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아동·청소년을 둔 친권자(보호자)가 자녀의 게임접속을 하루 최장 3시간으로 강제 제한(셧다운)할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다. 취지를 이해한다 해도 주객이 전도됐다. 자녀의 게임시간을 제어하지 못해 법에 의존하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무리 해도 제어가 안 된다면 그건 법이 아닌 심리치료의 영역이 아닐까. 시간 통제만 하면 문제점이 사라질까. 모든 법안의 수치는 의미가 있을 텐데 과연 최장 3시간이란건 뭘까. 3시간까지는 중독이 아니라는 얘길까, 부모가 3시간 정도는 허용해도 괜찮다는 뜻일까.

 인터넷이나 게임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게 아니다. ‘미디어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이론이나 “어른 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아이들은 인터넷과 게임, 휴대폰으로 사회화를 겪고 있다”는 어느 교수분의 말처럼 오히려 새 미디어를 향한 사회적 관심과 접근은 더욱 필요하다. 문제는 왜 꼭 규제로 동여매는 미봉책만을 쓰냐는 것이다. 그것도 어른들이 경험하지 못한 미디어가 들끓고, 다양성이 폭발하는 이 시대에.

 얼마 전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재미난 실험을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 오뚝이를 세워놓고 A그룹 아이들에게는 누군가 들어와 공격하는 장면을, B그룹에는 끌어안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 후 아이를 한 명씩 방으로 들여보냈는데 하나같이 자신이 본 대로 행동했다. 또 나은영 서강대 교수는 자신의 인터넷·게임연구(2005)에서 “어머니가 시간을 직접 통제하는 것보다 개방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린이의 자기통제성을 높이는 것이 게임·인터넷 몰입 완화에 더 강한 영향을 주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제 아이들의 삶에서 인터넷과 게임을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걸 보여줄 것인지, 어떤 지도를 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을 풀어줄 가이드라인과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사회적 교육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정부가 ‘진짜’ 할 일이다.

 조인혜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