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설비 지중화` 국가 낭비 초래

비용부담 놓고 지자체-사업자 다툼

 지방자치단체와 통신사 간 통신설비 지중화 공사 비용 부담 갈등이 확산되면서 공사 기간 지연, 소송전 등으로 인한 국가적 낭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통신설비 지중화 공사는 전주에 매달려 있는 공중 통신선(가공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작업으로 전국적으로 진행하게 되면 공사 비용이 총 6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자체의 지중화 요구가 늘어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명확한 비용 부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일 지자체 및 통신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시 경전철 개통이 44억원의 지중화공사 비용 부담 문제 등을 이유로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용인시 경전철 사업은 지난해 2005년 착공해 올해 개통이 예정됐지만 내년 7월 초로 늦춰졌다.

 용인시가 경전철 공사와 관련한 10.6㎞ 구간에서 통신선을 매설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비용을 통신사가 부담하도록 해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LG데이콤·SK브로드밴드·드림라인·SK네트웍스·기남방송·세종텔레콤 등 7개 사업자가 관련됐다.

 용인시 경량전철과 관계자는 “전적으로 지중화 사업 때문에 공기가 지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갈등은 서울시 강남구 및 동작구와 통신사들의 소송전에 이은 것이다. 이들 지자체 역시 관내 지역에서 지중화 공사를 하며 통신사들에 총 40억원을 요구해 법정에서 만나게 됐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불거질 것이라는 점이다. 친환경, 도시 미화 등을 이유로 지중화를 서두르는 지자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줄소송으로 이어지게 되면 지자체 사업 지연은 물론이고 법정 소송을 통한 손해도 막심할 것이 분명하다.

 KT·SK브로드밴드·LG파워콤 등 통신사업자들이 전국적으로 구축한 가공 통신선은 총 40만6000㎞ 규모다. 이를 모두 지중화하게 되면 60조9000억원(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평균 공사비 기준)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통신업계는 통신설비 지중화를 요구한 지자체(원인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지자체는 별도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으므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맞섰다.

 과거 대법원·서울고등법원·수원지방법원 등의 판결에서 공사 원인을 제공한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원인자 부담)이 타당하다는 판시가 나온 적 있다.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통신사들은 한국전력과 협약 체결로 대가를 지급하고 전주를 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 전주에 설치하는 전력선은 별도 허가가 필요 없는데 같이 걸린 통신선에는 허가가 있어야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일부 지자체는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통신선을 강제 철거할 수도 있다는 방침을 피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요구대로 통신 설비를 이설하는 것은 비용도 문제지만 대국민을 상대로 한 통신서비스와 연관돼 있어 대규모 민원 발생도 우려됐다. 사업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총리실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통신사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김원식 중앙대 교수는 “통신사들은 이미 중앙 정부 허가를 받아 통신설비를 구축한 바 있고 법적으로도 통신설비 이설에 대해 원인 제공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됐다”면서 “지자체가 지중화 공사를 요구한다면 협의를 거쳐 통신사와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방송통신위원회 등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갈등을 중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