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11일 개원 40주년을 맞이한다.
KDI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초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개발의 산파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이를 통해 KDI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경제분야 연구소라는 영예를 얻은 것은 물론 이제는 한국형 경제개발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대한민국의 전도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경제발전史와 함께한 40년..정책연구의 `총본산`
KDI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발정책을 왕성히 추진하던 당시 5개년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정책입안에 도움을 줄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뜻에 따라 1971년 3월 설립됐다. 당시 KDI는 5개년 계획 작성은 물론, 경제기획원이 주관한 3개년 연동계획과 경제운영계획의 작성에도 참여했다.
KDI는 경제성장 단계별로 제기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치유할 해법을 제시하면서 변모를 거듭했다.
1980년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자 재벌 연구에 관심을 쏟았다.
1986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KDI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구·고용·문화·여성 등에 이르는 기초통계 정비방안을 연구해 사회지표 체계를 대폭 확대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북한 연구를 본격화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KDI는 북한경제의 실상, 경제협력 연구를 통해 당시 남북경제회담과 이후 남북 고위급회담 관련 정책수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는 세계적인 금융자유화·국제화 추세에서 금융개방화와 금융개혁 과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1998년 4월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실기업정리와 기업지배구조 등 기업부문 연구, 경제위기로 중요성이 높아진 사회안전망과 재정건전성 연구 등도 주된 관심사였다.
2000년대 들어 KDI는 해외로 시선을 넓혀갔다.
세계은행(IBR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의 공동연구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30여개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국가적 위기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중장기 정책과제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결과로 KDI는 지난달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이 선정한 세계 75대 선도적 싱크탱크로 선정됐다. 아시아 지역 1천200여개 싱크탱크 중 최고의 경제분야 연구소로, 국제개발 분야에서는 세계 22위 연구소로 꼽혔다.
◇인재의 산실..관료·정계·학계 유력인사 배출
40년간 KDI를 거쳐간 인사는 1천여명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KDI는 학계와 경제계, 정계 등 사회 곳곳에 인물을 배출하는 인재의 산실 역할도 했다.
정부 쪽으로는 초대 김만제 원장이 경제부총리를 지낸 것을 비롯해 사공일 무역협회장, 구본영 전 과학기술처 장관, 최 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현직에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KDI를 거쳐갔다.
또 김기환 전 상공부 차관, 박영철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정진승 전 환경부 차관,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김대영 전 건설부 차관, 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현정택 무역위원회위원장도 KDI 출신이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강봉균 의원이 제10대 KDI 원장을 지냈고, 한나라당 유승민, 이혜훈, 신지호, 유일호 의원도 KDI가 배출한 국회의원이다.
대학교와 연구기관에서도 250여명의 KDI 출신들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권을 제외하면 과거처럼 관료로 적을 옮기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설립 초창기만 해도 정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부 쪽에 몸을 담는 일이 잦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우리 정부의 역량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2013년 예정된 세종시로의 이전은 KDI 입장에서 반길 일이 못된다. KDI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세종시로 옮기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도 5명가량의 연구원이 대학교나 민간연구소 등으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