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기획] 인식을 바꿔야 한다..."예산 · 조직 홀대는 이제 그만"

[농협 기획] 인식을 바꿔야 한다..."예산 · 조직 홀대는 이제 그만"

 “대부분의 IT투자는 스티어링 커뮤니티(조정위원회)를 통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전적으로 최고정보책임자(CIO)와 정보기술(IT) 조직이 집니다. IT 관련 예산을 일순위로 줄여버리는 상황에서 CIO들은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혁신적인 전략 수립은 요원해집니다.”

 A금융기관 CIO의 하소연이다. 비단 이 기관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 CIO는 전략가가 아닌, 결정된 의사를 실행하는 ‘실무자’ 역할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IT조직을 돈 못버는 ‘코스트 센터(cost center)’나 한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업계 CIO들은 최근 잇따른 금융 전산사고의 근본 원인을 이처럼 CIO와 IT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관행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CIO에게 책임만을 전가하고 정작 힘은 실어주지 않는 행태를 꼬집는 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CIO 탓’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사태들은 언젠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비즈니스에서 IT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업무 처리속도와 생산성, 고객 편의성 향상에만 치중해 CIO와 IT인력들에 대한 지원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는 게 CIO들의 얘기다.

 정순정 산업은행 IT센터 부행장은 “빈번히 발생하는 전산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IT 전문인력들의 자긍심부터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성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합당한 권한이 CIO에게 보장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본인이 속한 회사나 조직이 다른 쪽보다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더 나은 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IT의 중요성이 인정받고 CIO에게 그만큼의 권한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레 조직원들의 충성도도 높아질 수 있다.

 게다가 예산과 관련해서는 더욱 인색하다. 정부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예산 삭감 일순위는 IT 및 보안 예산이다. 예산과 조직을 홀대하면서 문제만 터지면 ‘희생양’만 찾는 게 현재의 인식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 부행장은 “마인드가 달라지면 일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며 “보안담당자와 같이 대부분 IT인력들이 기피하는 업무도 자긍심이 생기면 더욱 충실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농협 사태를 북한이 관여한 사이버테러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전산시스템과 인력 관리 소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때론 밤을 새워가며 고생한 대다수 농협 IT직원들의 노력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게 안타깝다는 게 CIO들의 반응이다.

 한 CIO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농협을 비롯한 전 산업군에서 CIO의 권한 보장과 IT인력들의 처우 개선이 먼저 논의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