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분석기관 윌리엄블레어에 따르면 2010년 디지털 콘텐츠 및 인터넷 업계로의 벤처투자 규모가 221건, 36억달러였다. 약 4조원이다. 리빙소셜, 그루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제니맥스미디어, 징가 등 게임기업에 투자가 몰렸다. 벤처투자를 담당하는 엔젤·벤처캐피털은 자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다. 벤처신생기업의 기획 단계부터 시제품이 상품화될 때까지 참여해 동반자적 입장에서 성장에 일조한다. 이러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5%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도 이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재정의 4%인 3조원을 지원했다. 세계 최고 수준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했다. 벤처 창업 인큐베이팅·자금·세제 지원에 힘입어 다양한 창업 기회가 생겼다. 그 결과 NHN, 엔시소프트, 다음, 휴맥스, 안철수연구소 등 많은 벤처기업이 출현해 성장했다. 100여 창업투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국내 벤처투자에는 정부 지원금이 큰 역할을 한다. 지난해 7월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벤처확인제도를 시행해 1회 이상 벤처확인인증을 받은 기업 4만397개 중 242곳만 매출 1000억원 이상을 달성했다. 성공률이 0.6% 정도인 셈이다. 첨단 기술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시장에 도전한 1000개 신생기업 중 6곳만 성공 대열에 낄 수 있었다.
‘벤처’라는 의미가 내포하듯 더 많은 기업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콘텐츠 산업 진흥을 업으로 삼는 나는 6개 성공 기업보다 생존해 가거나 퇴출됐을 994개 기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994개 기업을 기반으로 6개 성공 기업이 나타날 수 있었다.
1990년대 세계 사회·경제·산업에 불어닥친 ‘IT 패러다임’ 변화에 비견할 변화가 2010년대 일어난다. ‘스마트 패러다임’이다. IT 패러다임이 전산화를 통한 효율 극대화를 꾀했다면, 스마트 패러다임은 개인 최적화를 통한 효용 극대화를 추구한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스마트TV 같은 스마트 기기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서비스, 이를 담당할 스마트 콘텐츠 업체가 관련 산업 주체가 될 것이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에는 반드시 벤처기업에 기회가 있다. 기회를 성공사례로 만드는 게 우리 기업, 우리 정부의 몫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스마트 기기·서비스 업체는 주로 대기업이 담당하는 반면에 스마트 콘텐츠는 여러 1인·중소기업이 맡는다는 점이다. 스마트 콘텐츠 시장은 초기다. 초기 시장의 높은 위험을 감당할 1인·중소기업은 없다. 창투사 역할이 중요하지만 규모의 한계로 말미암아 초기 시장 위험을 홀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스마트 콘텐츠의 대규모 수요 창출과 인프라 지원이 필수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기회가 왔다고 모두 기회를 잡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와 K팝이 보여 준 우리 콘텐츠의 가능성을 스마트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기회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연철 한국콘텐츠진흥원 차세대콘텐츠기획팀장 ycchoi@kocc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