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엿볼 시간에 "대놓고 찍어라!"

[사이언스 인 컬처]벽 뒤 세상을 볼 수 있다

첩보 영화 속 요원이 정보를 얻기 위해 변장을 하고 위험 지역에 침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은 상대진영에 첩자를 심어놓기도 한다. 영화 `무간도`처럼 말이다. 하지만 벽 뒤 사물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어 액션 영화는 좀 시시해지겠지만 요원들은 편해지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 곧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과학 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최근 벽 뒤 물체를 볼 수 있는 촬영 기술이 조만간 움직이는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류 내부나 심하게 오염된 지역과 같이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도했다.

MIT대학 미디어연구소는 최근 산란된 레이저 광을 이용한 초고속 카메라로 숨겨진 물체의 이미지를 찍을 수 있는 촬영 기술을 개발했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한다면 군사용 또는 산업용으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MIT연구진은 숨겨진 물체의 먼 쪽에 있는 벽에 레이저 광 펄스를 발사한 뒤, 산란광이 카메라에 도달하는 시간을 기록했다. 벽에 튕긴 뒤 숨겨진 물체에 부딪친 광자들은 다시 벽으로 튕겨 나와 카메라에 도달한다. 산란된 소량의 산란광들은 약간씩 다른 시간에 카메라에 도달한다. 이런 시간적 차이가 숨겨진 물체 형태를 드러내는 열쇠를 제공했다.

카메라에서 숨겨진 물체가 있는 뒤쪽 벽으로 레이저 펄스를 발사했을 때 벽면과 숨겨진 물체, 카메라 사이를 산란된 빛이 왕복한다. 왕복 시간의 작은 차이를 이용해 숨겨진 물체의 이미지 촬영할 수 있다.

연구를 수행한 MIT 미디어연구소의 라메쉬 라스카 카메라 컬처 연구팀(Camera Culture Research Group) 팀장은 “소리 메아리에 익숙하지만 빛의 메아리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들은 물체 위치와 형상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되는 데까지 전체 프로세스는 3~4분 정도가 걸린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이런 인식 확인 과정을 10초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