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 초일류 꿈꾼다]<5>한국편- 한국, 지금이 초격차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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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한국은 LCD 종주국으로 불렸던 일본을 따돌리고 양산 능력에서 1위에 올라섰다. 한국이 LCD 시장에 본격 진출한 뒤 LCD 강국 일본을 제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6년. 조금 더 거슬러가면, 지난 1998년 삼성전자가 기업별 순위에서 최초로 세계 1위(점유율 18.6% 정도로 추정)에 등극하기도 했다.

[소재부품 초일류 꿈꾼다]<5>한국편- 한국, 지금이 초격차 기회다

한중일 지역별 투자 계획. 출처 : 디스플레이뱅크
한중일 지역별 투자 계획. 출처 : 디스플레이뱅크

그로부터 10여년의 시간이 흘러 한국은 명실상부한 디스플레이 초강국이 됐다. LCD 패널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점유율은 50%를 훌쩍 넘어선다. 전체 LCD 시장 생산 능력을 따져봐도 한국의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한국이 10여년간 1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 보다 앞선 투자에 있었다. 불황에도 시장을 내다 본 선제 투자를 감행했고, 이를 발판으로 호황기에는 시장 점유율을 대폭 늘려나갔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고 대형 LCD 투자가 시들해 지면서 한국의 초강국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투자와 일본·대만의 협공 등이 우리나라를 압박한다. 시장조사 업체 NPD디스플레이서치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과 경쟁국간 격차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해 세계 LCD 패널 생산 능력에서 한국이 48%, 대만 34.2%, 일본 11.6%, 중국 6.0%의 점유율을 각각 차지했다. 그러나 오는 2014년이면 한국이 44%, 대만이 28.2%, 중국 18.6%, 일본 8.9%의 점유율로 경쟁 구도가 급변할 전망이다. 중국이 바짝 추격해오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서도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큰 초격차를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앞선 기술 투자를 주도한다는 전제에서다. LCD 시장이 점점 정체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도적 지위를 더 공고히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다는 뜻이다.

◇불안한 1위=LCD 시장에서 한국의 지배력은 독보적이다. 특히 수익률이 높은 대형 패널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출하량 비중은 55%에 이른다. 스마트패드(태블릿PC)용 LCD 패널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70%를 웃도는 수준이다.

PDP 모듈 시장도 한국이 평정했다. 그동안 PDP 모듈 시장 1위였던 일본 파나소닉이 생산 능력을 축소하면서 올초부터 삼성에 1위를 내줬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시장은 아예 한국의 독무대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 점유율 97%를 차지하고 있다. 55인치 대형 AM OLED 패널 개발에 성공한 곳도 삼성과 LG 밖에 없다.

적어도 겉모습은 든든하지만, 한국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를 디스플레이 시장 선두로 이끌었던 양산 투자는 실종된 지 오래다. 당분간 한국에서 LCD 팹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불황까지 겹쳐 전례 없던 구조조정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의 합병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향후 LCD 조직과 생산 역량을 AM OLED에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LG디스플레이는 외연을 키워갔던 비즈니스트랜스포메이션 전략에 메스를 가했다. 부품과 세트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사업 규모를 키워갔으나 이제는 조직 슬림화로 방향을 틀었다. 1위는 1위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은 1위다.

위기 상황에 주변국들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공급 과잉 현상이 여전한데도 중국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투자 소식이 들려온다. 호시탐탐 한국의 기술을 노리고 있는 것도 불편하다. 생존을 염려했던 대만은 39인치 TV처럼 새로운 크기 모델을 내놓고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AM OLED 기술에서는 일본과 손을 잡았다. 일본은 여전히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형 LCD 시장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다행스러운 회복 조짐, 그리고 변화의 몸부림=지난해말 극심한 재고 조정의 여파로 올 초부터 서서히 LCD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매월 LCD 업계 평균 가동률은 75%에서 77%, 79%씩 조금씩 늘어났다. 선두 업체들인 한국의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80%대에서 꾸준히 상승해갔다. 가격도 지난 4월부터는 소폭 상승하기 시작했다. 최영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무는 “불황이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서서히 극복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모듈 사업에 집중했던 국내 LCD 패널 업체들은 최근 셀 비즈니스로 사업 모델을 전환하고 있다. 국내외 고객사들이 갈수록 셀 공급 방식을 원하면서 이에 적극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삼성은 이미 절반 이상을 셀 비즈니스로 바꾼 것으로 파악된다.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노력도 시도하고 있다. 8세대(2200×2500㎜) 유리 한 장을 다양한 모드로 잘라내는 방식이다. 같은 8세대에서 크기를 다양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초고선명(UD) TV가 서서히 소비자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호재다. UD TV가 확산되면 70~80인치 대의 대형 TV 수요가 나올 수 있다. 대형 TV가 인기를 끌면 8세대 이상 대면적 팹 투자가 되살아 날 수 있다.

◇시장을 만드는 선행 투자가 살 길=국내 업계도 디스플레이 경기 침체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초격차를 위해서는 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부터 싸움은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달렸다. 신성태 삼성디스플레이 전무는 지난달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기조연설에서 “디스플레이 시장은 포화됐다고 할 수 있다”면서 “이제는 상상력으로 시장을 창출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크기를 키우고 화질을 끌어올리는 데 그쳐서는 더 이상 수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AM OLED TV는 새로운 TV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명암비와 빠른 응답속도, 천연색 재현이라는 무기를 통해 몇 년째 잠자고 있는 TV 수요를 깨워보겠다는 시도다. 투명디스플레이를 디지털 사이니지에 적극 도입하는 것도 좋은 사례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투자도 한국이 가장 앞선다.

각계 전문가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AM OLED 시장 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지만 AM OLED를 뛰어넘을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AM OLED를 통해 한국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처음 기술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은 과거 LCD 시장 초기부터 연구개발에 전력한 덕분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문대규 P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무엇이 될 지는 뚜렷하지 않다”며 “그러나 지금부터 어떤 디스플레이가 차세대 시장을 만들어낼지부터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별 CAPA 비중 전망 (단위 %) 출처 : NPD디스플레이서치.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