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정년이란 단어야 말로 은퇴해야

한국지멘스 인더스트리 부문 산업자동화 부서에서 기업 어카운트 매니저(CAM)로 근무하고 있는 구형모 전무는 1997년에 지멘스에 입사해 지난 2008년 3월에 정년퇴직했다. 구 전무는 퇴직 직후인 그해 4월, 2년간 정년을 연장했고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지금까지 몸담고 있다.

구 전무는 “지난 수십 년간 현장에서 갈고 닦은 엔지니어링의 실무 능력과 경험,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점을 회사에서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연장 근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3월 정년퇴임한 이원활 부장 역시 한 달 만에 계약직으로 다시 복귀했다. 지멘스 주요 에너지 고객사와 독일 본사의 현장 프로젝트 운영 및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정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젊은 직원들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든든한 원군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국내 300인 이상 한국기업의 평균 정년은 57.4세이지만 실제 퇴직연령은 53세로 유럽 평균 연령인 65세보다 10년 이상 빠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 되면서 조기 퇴직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내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지멘스는 1990년부터 본사 경영방침에 따라 정년을 만 58세로 정했다. 이후에는 개별적으로 최대 2년까지 정년 연장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의지가 있는 직원들은 인사부와 경영진의 논의를 통해 연장 계약을 결정한다.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정년 전과 변함이 없다.

현재 정년 연장 직원은 14명으로 엔지니어 직원은 6명이다. 한국 지멘스에 근무하고 있는 최고령자는 65세로 정년 이후로 8년째 근무 중에 있다. 올해도 3~4명의 직원과 정년 연장을 논의하고 있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회장은 “전기·전자 분야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가 있어야 전문성이 구현될 수 있다”며 “숙련된 엔지니어의 정년 연장은 회사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전력거래소는 지난해 9·15 정전사태 이후 은퇴자 8명을 긴급 수혈했다. 계통운영 전문가 복직은 남호기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진행한 첫 업무다. 부족했던 전력그룹사와의 상호교류·현장경험을 이들이 채우고 있다.

이들은 발전·송배전·계통 등 전력운영 업무 전반을 모두 경험한 이른바 멀티플레이어다. 전력업계 업무협조를 위한 전력그룹사 인맥이 탄탄한 점도 한몫하고 있다. 비록 한번 은퇴했던 인력들이지만 전력수급 위급상황에 이들 만큼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는 게 내부 평가다.

은퇴 인력 재영입은 내부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전력거래소는 8명의 계통운영전문가를 불러들여 2명의 기상청 출신 기상전문가를 함께 채용했다. 기상전문가는 급작스런 폭염과 혹한 등 특이 기상상황 등을 예고하며 전력수급 예측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직원의 20%를 대기업 출신 전문 엔지니어로 채용한 한국실리콘은 이 가운데 10%를 은퇴한 전문 엔지니어로 채용했다. 이들은 현장 경험이 중요한 화학산업분야에서 전문 노하우를 바탕으로 회사에 자문역할을 수행한다.

안형규 한국실리콘 사장은 “은퇴 인력들의 경험은 폴리실리콘 공장 건설 시 우리 상황에 맞게 개조, 최적화해 품질을 높이고 생산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정형·함봉균·최호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