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소프트웨어 뱅크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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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단상]소프트웨어 뱅크의 필요성

지난해 IT 융합과제 최종 성과평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4개사의 과제 결과물을 심사한 적이 있다. 네 가지 과제 모두 인체의 각 부위에 부착, 특정한 움직임을 센싱하는 부문이 있었다. 측정값을 네트워크를 거쳐 설정된 PC에 전달하는 네트워크 관리 부문도 있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네 가지 과제의 센싱 부문은 모두 달랐지만, 센싱해 전달된 측정값을 집산하고 로그로 기록하는 네트워크 관리 소프트웨어(SW)는 모두 유사했다는 것이다. 그 중 한 가지 SW를 공통으로 사용해도 네 과제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얼마나 큰 국가적 낭비인가. 기업은 핵심 엔진 개발에 주력하고 공통 SW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해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우수 기술을 용이하게 찾아내 주력 제품의 생산, 판매에 활용하고 전체 공정에 포함되는 SW는 이미 개발된 제품을 활용할 길이 열린다면 개발 위험 요인과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이는 SW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동차, 에너지, 로봇 산업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인텔, SAAB 등 선진 기업은 외부에서 획득하는 SW의 품질 확보와 지속적인 가치 창출을 위해 제3자 독립조직을 활용해 품질관리 활동을 강화하는 체계까지 갖췄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녹록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타사의 SW 제품은 물론이고 자사가 예전에 개발한 SW의 재활용도 “차라리 다시 개발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가 많았다. 대기업조차 정교한 SW 기술 획득 체계가 없고 품질관리 역량이 부족한 탓에 SW 기술을 소싱해서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이크로소프트 SW 개발자 1명당 품질관리 전문인력은 1.7명이지만 국내 SW 대기업은 개발자 7명당 1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공생발전형 SW생태계 구축전략` 가운데 이 같은 취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SW 기업의 개발 및 품질역량 제고와 자산 공유·거래 및 협업 활성화를 위해 SW 유통 인프라인 `SW 뱅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민간·공공 부문 SW 연구 결과물과 중소기업 우수 SW기술·자산을 통합·저장하고 수요자와 공유·유통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SW 개발 프로젝트 결과물과 중소기업의 SW 상세 기술설명 자료가 모이고, 기술과 제품의 품질 검증으로 신뢰성을 얻게 될 것이다. SW 공학 측면의 개발 방법, 우수 사례 등이 제공되고 기업 보유 기술·제품의 홍보와 거래를 지원해 유통 시장 역할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면 SW 품질관리(QA) 조직이 없고 체계적 품질관리 없이 임시방편식 테스트에만 의존하는 기업에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수많은 SW 연구개발(R&D)의 기술 및 제품 정보가 축적돼 시장에서 인정받고 기업 간 기술협력 기회도 생길 것이다.

SW 중심의 IT 융합을 가속화하고 우수 인력 유입을 활성화해 미래 한국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분명히 일조할 것이다. 그동안 여러 SW 산업 진흥책이 추진됐지만 SW기술과 기업, 시장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 시도는 많지 않았다. 정부의 강력한 실행력과 함께 SW 산업계의 적극적 참여 노력이 필요하다. 경험 많은 SW 개발자 출신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확보해 수준 높은 정책을 추진해주기를 촉구한다.

이형택 이노티움 대표 htlee@innoti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