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미안해요, 쿠베르탱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미안해요, 쿠베르탱

더워도 너무 덥다. 기록적인 폭염에 몸은 녹초가 된다. 계속된 열대야에 자다가도 숨이 턱턱 막힌다. 다행인 건 이 기간 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이다. 열대야로 잠을 설치든, 선수를 응원하며 잠을 설치든 수면부족으로 눈이 퀭한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잘됐다.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런던은 낮밤이 우리나라와 거의 반대니 직장 상사 눈치를 살피며 업무 중에 응원할 일도 없으니 좋다.

올림픽에선 연일 반복되는 심판의 오심 때문에 말이 많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걸 알면서도 속 좁은 나는 혈압이 오른다. 사실 오심과 편파 판정이 없는 올림픽은 없었다. 잊고 있을 뿐이지 이전에는 더한 오심도 많았다. 그걸 알면서도 유난히 우리 선수에게만 오심이 많은 것처럼 느끼니 난 역시 소인배 중 한 명이다. 올림픽 정신을 떠올리면, 스포츠를 순수하게 그 자체로 바라보면 눈에 핏발을 세울 일도 없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애국심은 왜 그때만 불타오르는 건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 강령을 누구나 안다. 일상에서 흔히 인용할 만큼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이 말의 원조는 쿠베르탱이 아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에텔버트 탈보트 미국 센트럴 펜실베이니아 성당 주교가 한 말을 쿠베르탱이 인용한 것이다. 원조가 누구면 어떠하랴. 올림픽 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해 군더더기 없는 지상 최고 강령으로 만들었으니 쿠베르탱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명문(明文) 중의 명문인 올림픽 강령이 탄생한 지 104년이 흘렀다. 2012 올림픽 개최지는 다시 런던이다. 탈보트 주교나 쿠베르탱 남작이 살아 있다면 오늘날의 올림픽을 어떻게 평가할까.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니 흡족해할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란 그릇은 남았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정신과 혼은 바닥을 드러냈다는 현실을 확인하곤 미간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고 승리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현대인이 메달 수, 그것도 금메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게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는 국가별 순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올림픽 개최국과 200여개 참가국은 메달 색깔로 순위를 매기려 애쓴다.

누가 모를까봐 경제학자들은 올림픽 메달 수가 경제력, 국력과 일치한다는 통계도 친절히 만들어준다. 대니얼 존슨 콜로라도대학 교수는 `경제지수로 본 금메달 전망`이란 보고서로 유명세를 탔는가 하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림픽과 경제`라는 보고서에서 올림픽 참가국의 금메달 획득 전망도 내놨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100m 육상이나 마라톤이 아닌 대회 손익계산서”라고 강조하는 상황이다. 선수의 값진 노력을 메달로 평가하는 지금의 시대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올림픽 정신은 상업주의로 변질됐고, 글로벌 기업은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 광고효과 올리기에 사활을 건다.

나부터 반성한다. 초연해지자. 더 이상 경기 승패나 메달 색깔에 집착하지 말자. 땀 흘리는 선수 모두에게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올림픽을 지구촌 평화와 화합의 축제로 되돌리자. `걱정마요, 쿠베르탱. 한 세기 후의 올림픽은 당신이 말한 올림픽 정신으로 넘쳐 날테니.`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