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해결해 나가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다양한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중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 미디어 부문이다. 방송 3법 개정을 통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방통위와 방심위 지배구조의 문제 등이 중요한 문제로 이슈화되고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방송과 통신 관련 기금인 방발기금(방송통신발전기금) 및 정진기금(정보통신발전기금)과 관련된 문제다.
기술의 발전은 미디어 영역의 축을 완전히 바꾸었다. 미디어 영역에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이제 더 새롭지 않고, 이러한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의 사용은 비록 나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언정, 뉴 미디어에 적응해 가는 모습은 굳이 방통위를 비롯한 전문기관의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 전파를 통해 전송된 방송을 소파에 앉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 패드, 노트북을 통해 정주행 또는 역주행하면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를 전송 또는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송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미디어 서비스 이용자를 위해서는 이러한 미디어 인프라에 대한 구축과 이용을 위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목적을 위해 마련된 것이 방발기금과 정진기금이다.
그런데 현재의 방발기금과 정진기금은 미디어 생태계의 융합화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됐다. 방송과 통신을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로 통합하면서 미디어 법제의 근본 축을 시대 순응적인 법제로 변경한 유럽연합 회원국과 비교하면, 우리의 미디어 법제는 아직도 방송 또는 통신을 사업자별로 규제하는 수직적 규제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변화된 미디어 생태계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의 축이 지상파방송, 종편방송, IPTV에서 OTT로 바뀌었다. 시청각서비스 이용자의 미디어 이용 행태가 OTT 사업자, 특히 넷플릭스를 대표로 하는 외국계 OTT 사업자로 옮겨가면서 미디어 생태계의 인프라 구축비용인 방발기금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방발기금에 관한 법제는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OTT 사업자들의 급격한 시장점유율 확대로 기존 방송사업자들의 수익 감소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데 시대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매년 부과되는 방발기금은 기존 방송사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방발기금은 2024년을 기준으로 IPTV가 47.7%로 절반에 가까운 부담을 하고 있고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홈쇼핑, 종편, 위성방송 순으로 부담하고 있다. 기존의 지상파방송, SO, 홈쇼핑, 종편 그리고 IPTV 사업자 간의 방발기금 부담에 대한 논의는 미디어 시장의 많은 부분을 OTT 사업자에게 침식당한 상태에서는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사업자는 여전히 방발기금을 일정 규모로 부담해야 한다는 현실은 자칫 우리 미디어 생태계를 고사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기존 방송사업자의 경영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생태계의 지배적인 OTT 사업자는 현행 미디어법상 방발기금 뿐만 아니라 현재 통합 논의가 진행중인 정진기금도 부담하고 있지 않다.
특히 이러한 무임승차를 하는 OTT 사업자 중 국내의 미디어 수입을 국외로 실어 내는 외국계, 정확하게는 미국 OTT 사업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 미디어 생태계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미디어 법제의 모순적 규제가 드러나는 상황이다. 그동안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알면서도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우려해 미국 OTT 사업자를 우리 미디어 법제 규제시스템에 포섭하지 못한 것은 미시적으로는 통상마찰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우리의 미디어 생태계, 더 나아가 미디어를 통한 우리 대한국민의 정체성을 상실케 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정책결정권자의 근본적인 결단의 부재와 통상마찰을 우려하는 정부 부처의 태도 등으로 인해 아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모든 영역이 구태에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해야 할 상황이듯이 미디어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현재 방발기금을 부담하지 않는 OTT 사업자에게도 미디어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방발기금을 부과해야 하며 더 나아가 방발기금과 정진기금에 대한 본질적인 패러다임을 변경하는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 특별부담금의 성격을 가진 방발기금과 정진기금이 수익자부담원칙과 응능원칙이 고려된 법제로 개정되어 미디어 사업자에게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와 정부가 방발기금, 정진기금의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점을 풀어야 할 시기이다. 대한국민의 주권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절차와 제도를 통해 민주적으로 미디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최우정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chwooj@k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