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을 바라보는 대선 주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일본 원전 사고 등의 여파로 국민 정서가 나빠질 대로 나빠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공약은 곧 표심을 흩뜨리는 일이다. 골치 아픈 원전 문제만큼은 무난히 넘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원전에 우호적인 공약이 나올 리 만무다.
박근혜 후보는 원전 증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부 반대`를,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원전 증설은 물론이고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연장도 반대하는 `탈원전`을 주장한다. 아직 공약으로 확정하진 않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원전에 우호적일 리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한 일본은 당연히 `탈원전`이다. 정부가 최악의 원전사고를 겪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는 그것뿐이니 조건부 반대가 통할 리 없다. 원전 증설이란 말은 입에 담을 수도 없다.
지난 9월 14일 일본 정부는 에너지 환경회의를 열었다. 2030년 원전 가동 제로 계획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며칠 후 일본 총리는 원전에 대해 “겸허하게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모호한 발언을 했다. 핵 연료 사이클 문제, 신재생에너지의 미래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내놓은 원전 제로 선언인지라 경우에 따라 수정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였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그는 왜 욕먹을 각오로 그 같은 발언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경제대란을 겪고 있는 일본은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대체 이후 급등할 전기요금은 결국 국민부담과 산업계의 경쟁력 저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아오모리현 오마원전 증설공사를 재개했다. 제로 선언 이전에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라지만 15년만 사용할 목적으로 원전을 짓는 건 쉬 납득이 안 된다. 7월에는 간사이전력의 오이원전 2기도 재가동했다. 국민의 내각 지지율은 급락했다.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 데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각국에서 탈원전 선언이 터져 나왔다. 독일, 스위스가 자국 내 원전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는 원전 4기 증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되는 원전보다 더 많은 건 신설되는 원전이다.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대부분의 국가는 원전 건설에 적극적이다. 2030년까지 신설될 예정인 원전은 495기에 달한다.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을 다른 에너지로 대체하면 되지 뭐.” 말처럼 쉽지 않다. 화력·수력발전은 환경오염·파괴 때문에 안 되고, 풍력발전은 산줄기의 맥을 건드리니 안 되고, 조력발전은 바다 환경생태계를 파괴하니 안 된다. 태양광발전은 면적당 낮은 발전효율과 패널을 설치할 땅이 부족하니 안 된다. 억지처럼 들리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실상이다.
탈원전을 선언하는 건 쉽다. 중요한 건 선언이 아니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탈원전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20~3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식의 두루뭉수리한 계획은 대안이 아니다. 표심을 의식한 무조건적인 탈원전 선언이 아닌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가로막는 수많은 규제와 불비한 여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국민이 감수해야 할 전기료 인상은 얼마나 될지, 국민은 지금보다 에너지를 얼마나 더 아껴 써야 하는지 등의 충분한 설명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원전에 정치적 논리를 대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과 미래를 생각한 정확한 판단이 없는 공약은 그저 헛공약일 뿐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