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바뀌는 밴 수수료 체계, 무엇이 변하나

23년만에 사정당국에서 들고 나온 밴 수수료 개편안은 바로 `자율 경쟁 체제 도입`이다. 카드사가 가맹점으로부터 받고 있는 수수료에서 밴 대행 수수료를 완전 분리하겠다는 취지인데, 수십 년간 이어온 체계가 과연 계약 주체마저 바뀔 수 있을지 업계는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KDI의 수수료 체계 개편 목적은 명확해 보인다. 슈퍼갑인 대형가맹점 배를 불려온 음성적인 리베이트를 근절하고 건당 부과해온 정액제를 밴사간 경쟁을 유발해 정률제 형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밴 수수료 체계를 놓고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는 현행 정액제 수수료 체계가 카드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인식했다.

특히 밴사가 가맹점 모집을 위해 지급하는 리베이트도 가맹점 수수료의 원가 책정에 필요한 밴 수수료 체계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때문에 이번 수수료 개편안의 핵심은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현행 건당 부과 방식을 정률제로 바꿔 카드 대행 비용을 줄이자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는 밴사간 경쟁을 유발해 사업자 지위를 격상시키는 대신 리베이트 관행 구조를 이번에 없애겠다는 목적도 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독버섯처럼 만연한 리베이트 유착을 깨지 못하면 밴시장의 정화는 있을 수 없다”며 “공정위원회 등과도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국이 규제 일색으로 시장을 옥죄기보다는 시장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KDI는 밴 수수료 개편안을 최근 카드사와 밴사를 불러 모아 공개했다. 밴 업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집단 대응 움직임까지 보인다. 카드사로선 손해 볼게 없다. 다만 카드사의 여러 업무를 봐줬던 밴사가 독립사업자로 떨어져 나갈 경우 업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밴 수수료 대행 계약을 카드사가 아닌 가맹점이 하게 될 경우 그 변화는 막대하다. 우선 국내 13개 밴사는 전국 170만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별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른바 모든 대행 수수료 원가가 공개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카드사 수수료에서 일부 비용을 받아왔던 밴 업계로서는 동종 업계간 출혈 경쟁이 예고된다.

논란의 중심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은 지금보다 내려가고, 영세 가맹점은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밴사들이 조금이라도 가맹점으로부터 매출을 가져오려면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원했던 프로모션 비용이나 단말기 무상 지원 등의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 반면 대형 가맹점은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밴사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를 주더라도 꼭 챙겨야할 `갑`이다. 여기에 수수료 계약권까지 줄 경우 수수료는 지금보다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반면 카드업계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수수료 개편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이번 수수료 개편안이 다소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고 밝혔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와 밴사간 대행 업무는 카드 결제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수수료 계약 주체를 바꾸면 카드사 또한 밴 수수료 산정을 다시 해야 하고, 영세 가맹점 대상으로 밴사간 담합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KDI는 이번 개편안이 취지만 밝혔을 뿐 실행 여부는 각 업권의 의견을 들은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보다 많은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8월까지는 결론을 내야 한다”며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밴 업계로서는 지금보다 더욱 상황이 불리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