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기술인 열전! 멘토링 레터]가장 힘든 선택이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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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려는 학생들에게

KAIST에 진학한 시절 대학 1학년은 학과를 정하지 않고 학부체제로 1년간 공통과목을 수강하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과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과학고등학교에서 나름 잘했던 건 화학이었습니다. 생물 실험도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생물동아리에 들었습니다. 사실 대학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생물 관련학과에 진학하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자신 없었던 과목인 물리를 전공으로 정하고 지금까지 물리 분야 직업을 갖게 된 건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학부 1학년을 공통과목을 들으면서 전국에서 모인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일은 참 가슴 벅차게 기쁘고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천재처럼 보이는 친구가 너무나 많아서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잘한다고 생각했던 화학이나 생물보다 가장 못한다고 생각했던 물리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어렵겠다 생각하는 길, 뭔가 희소성이 보이는 그런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때까지 가장 기죽게 만들었던 물리학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리는 모든 학문의 기초니까 물리를 전공하게 되면 무슨 일을 맡더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생각은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졌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 물리학과로 진학한 동기가 60명이었고 그 중 단 세 명만이 여학생이었습니다. 60명 친구 중에 대학원까지 물리학으로 계속 전공을 고수한 친구는 20여명으로 전체의 3분의 2가 중도포기를 하고 다른 과로 전과하거나 아예 의대 쪽으로 가거나 했습니다. 세 명의 여학생 동기 중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끝까지 남은 여학생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어쨌든 20여명의 친구가 KAIST 물리학과로 진학해서 끝까지 전공을 지켜 박사학위까지 가게 됐습니다. 친구와 같이 수업 받고 실험하고 시험공부했던 나날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가장 소중한 추억입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학교에 가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렇게 좋은 친구들,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말로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끼리끼리 사귄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인맥`이라고나 할까. 사회를 살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안다는 것,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connection)은 아주 중요한 자산이라는 걸 조금 알게 됐습니다.

물리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까지 점수가 가장 안 나오던 물리학과로 전공을 결정했으니 대학생활도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물리를 좋아하는 친구, 천부적 직감으로 어려운 문제를 단숨에 척척 풀어내는 친구가 바로 옆에 있으니 살리에르 같은 고뇌를 느낀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오기 하나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사 경고를 두 번 이상 받게 되면 학교를 나가야 하는 강력한 규정이 있기도 하고 성격상 지고는 못살기 때문에 나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학부 3학년 때 위와 십이지장에 구멍이 네 개나 나는 위궤양을 얻게 됐습니다.

생애 참 힘겨웠던 그 순간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건 반드시 내 힘으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대학교 때 만난 남자친구, 지금은 나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소중한 한 사람이 많은 의지가 돼주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말 힘들 때 항상 변함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삶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정말 힘에 겨워 버거워하던 매 순간에 내 손을 잡아주며 위로와 격려를 주는 우산 같은 사람. 여러분도 그런 사람을, 반드시 이성이 아니더라도 꼭 만들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시절 나는 내 생애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분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대학원을 물리학과 우주과학 실험실로 결정하고 우리별 인공위성 제작에 참여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신 나의 스승님을 만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인공위성은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참 역동적이고 스스로 만든 결과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참 매력적인 분야였습니다.

From.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선임연구원 jahwang@kasi.re.kr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www.wise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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