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박사후 연구원, 비정규직 아닌 핵심 미래인재로 봐야

[과학산책]박사후 연구원, 비정규직 아닌 핵심 미래인재로 봐야

지난 3월 노벨상 수상자 12명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진단한 결과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진단 결과 가운데 필자는 데이비드 네스빗 미국 콜로라도대 화학과 교수의 지적에 크게 공감했다. 이른바 `포닥(박사후 연구원)에 대한 지원 부족이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성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도 “서울대는 창의성이나 과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있는 박사후 연구원들의 수가 부족한 `모래시계형` 인력 구조로 되어 있다”면서 “이는 국내의 우수한 포닥 연구자들이 해외 대학을 찾아 떠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석학들이 서울대에 하는 경고는 비단 서울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도 의미가 크다.

`박사후 연구원 과정`은 과학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지도교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동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석·박사과정을 거쳐 처음으로 자기 주도 아래 연구를 수행하는 시점이다. 연구자로서 진로를 결정할 정면승부 시기로, 창의 아이디어와 연구 열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1990~2015년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182명의 노벨상 수상 시점 평균 나이는 64세이지만 수상의 대상이 된 연구 성과를 발표한 시점은 평균 39세로 나타났다. 실험 기간을 대략 5년으로 본다면 연구를 시작한 나이는 약 34세였다. 지난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지즈 산자르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37세에 DNA 복구 과정을 밝혀냈다. 20세기 과학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받는 DNA 이중나선 구조 해독자 제임스 왓슨 인디애나대 교수와 한국인 과학 분야 노벨상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도 모두 포닥 연구원 과정 중에 본인의 핵심 연구 성과를 거뒀다.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 일본, 영국 등 과학 강국들의 경우 주요 대학과 연구소 연구그룹의 핵심 인력은 박사후 연구원이다. 이들 과학 선진국은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포닥 연구자들이 창의 아이디어를 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연구를 지시받는 보조연구자가 아니라 연구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박사과정 이후 2~3년 동안 자국 내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에 국내에는 박사후 연구자를 지원하는 펠로십 같은 지원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박사후 연구자라는 신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등 제도 지원이 부족하다. 필자는 박사후 연구자들을 연구 핵심 인력으로 유입시킬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정부 차원의 박사후 연구자 지원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핵심연구분야 우수인력발굴사업`과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이 정부 차원에서 운영되는 박사후 연구자 지원 대표 사업이다. 선발된 박사후 연구자에게 지원되는 조건이 좋아 필자가 속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도 이 사업으로 매년 잠재력 있는 연구자가 선발돼 활발하게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포닥 과정을 마친 후 대학, 기업체, 연구소 등의 정규직으로 다수 진출하는 등 좋은 결실을 맺고 있다. 하지만 선발 인원 수 제한으로 지원 수요에 비해 많은 박사후 연구원 지원자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둘째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에서 우수한 박사후 연구자를 유치·육성할 수 있도록 이들을 단순 비정규직으로 관리하는 현행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제시하는 박사후 연구자 운영 가이드라인 내에서 출연연들이 자체 포닥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하여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박사후 연구자들에게 전문성을 심화시킬 연구 활동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율과 정규직 연구원 증가율 간 괴리로 연구 효율 저하 문제, 국내 우수 박사 학위자가 선진국의 박사후 연구자로 떠나는 두뇌 유출 문제, 국내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일자리 부족 문제 등 복합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같은 난제들의 해결 방안으로 앞에서 살펴본 국내 우수 박사후 연구자의 유치 및 육성이 좋은 전략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보다는 국가 차원의 미래 인재 육성 지원을 통해 풍성해진 일본 등 선진국의 과학 기술 생태계가 더 부러운 것이 과학 기술자로서의 솔직한 마음이다.

주오심 KIST 미래인재본부장, joocat@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