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성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발견이었다. 우리 국민이 가장 크게 체감한 사건은 세계바둑 챔피언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결이 아니었을까 한다.`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전통 사회가 과학으로 보기 어려운 무조건 반사와 같은 판단 기준을 보유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바둑에도 `두 점 머리는 두들기고, 붙이면 젖힌다`와 같은 격언이라 불리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알파고는 바둑 격언을 무시하는 수를 뒀다. 초반엔 AI가 헤매는 것으로 조소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면서 초일류 기사도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강력한 새로운 수임이 밝혀졌다. 수천 년 역사로 확립된 지식이 수십 년 역사의 과학 방법론에 허점이 노출된 것이다.
바둑은 역사가 몇 천 년이 넘는 한·중·일 중심의 게임이다. 언젠가 과학 기술이 사람을 앞서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바둑은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막연히 믿어 왔다. 그러나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는 영국의 벤처기업이었고, 이를 구글이 키워 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수리력, 과학 기술을 이용한 문제 해결 능력 보고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수리력과 과학 기술을 이용한 문제 해결 능력에서 선진국 못지않은 역량을 보유했지만 직장과 일상 생활에서의 활용률은 대체로 낮은 상태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 명확해진다. 16~24세 연령의 한국인은 수리력, 문제 해결 능력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중장년층에 이르러서는 급격히 떨어져서 경쟁력을 잃고 만다. 비록 21세기 대한민국은 스마트폰, 드론,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 주행 등의 과학 기술로 넘쳐 나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과학 기술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국가·사회 이슈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여러 측면을 종합해서 살펴야 하는 복합 성격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 기술 방법론을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과학 기술 사회로의 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는 미래 세대 교육이다. 미래 세대가 우수한 과학 기술 역량을 갖추고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워 나가도록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청년층이 수리력, 문제 해결 능력에서 최고 수준임을 볼 때 우리 교육은 일정 부분 경쟁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일반 국민의 과학 기술 신뢰를 얻는 일이다. 과학기술계가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명한 프랑스 사상가 마르키 드 콩도르세가 `과학 기술이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건강,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생활 수준, 문화 발전을 위한 핵심 사항`이라 했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국민의 전폭 지지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의 과학 기술 소양을 높여야 한다. 과학기술자와 인문사회과학자가 만나면 소통이 어렵다고 한다. 과학기술자의 인문학 소양 부족과 일반인 눈높이에서 소통할 줄 모르는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중·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기술 용어라 해도 소통이 가능하다면 더욱 풍부한 과학 기술 지식을 사회 공유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상과학영화(SF) `인터스텔라`가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다. 그만큼 과학 기술 사회로 변모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런 잠재력을 일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첫걸음은 과학기술계가 일반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서울시 등이 협력해 서울 지하철 6호선 상월곡역에 올해 3월 초 `사이언스 스테이션`을 개관한다. 지하철이라는 친숙한 공간을 활용해 낯설고 어렵게만 인식된 과학 기술이 시민에게 다가간다는 시도가 바람직하다. 과학 기술 사회란 과학자와 시민의 빈번한 소통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활 속에 스며든 사회다.
김현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기술정책연구소 정책기획팀장, kimhyunu@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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