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B급'이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나요? 저는 영화가 먼저 생각납니다. 과거 한때는 고액 투자를 받지 못해, 현실조건에 맞춘 작품이란 취급을 받으며 소위 'A급의 아류'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현재는 B급이기에 담아낼 수 있는 세계관을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으로서의 위치, 배우도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더 빨리 만들 수 있는 고유의 영역으로서, 완성도와 작품성 측면에서도 전문가 및 시장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영역을 불문하고 붐을 일으키고 있는 ‘B급 감성’이나 ‘키치’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주류를 뜻하는 'B급'이라는 키워드는 다르게 보면 주관이 뚜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주류에서는 해소되지 않았던 공감대와 신선함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예컨대 블랙코미디로 유명한 방송인 겸 작가 유병재와 B급 감성을 가미한 헐리우드 영화 <데드풀>의 인기가 방증입니다. 유병재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데드풀> 관련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이는 곧 호불호가 갈리면서도 주류에서는 기피하는 주제를 전에 없던 방법으로 표현하기에 팬층을 형성했습니다.

이런 B급감성의 유행은 유통업계에서도 핫한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소싱에이전시 케이그룹 에서도 멋지게 잘 만들어진 영상이나 상세페이지보다 좀 더 현실적인 review형식의 동영상 컨텐츠나 현실감각의 디자인 페이지가 호응도도 좋고 온라인 상품구매로도 이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실제 제조사 측이 상품기획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B급 코드를 주된 테마로 적용해 고객들의 흥미와 구매욕을 자극함으로써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6월 28일 서울 코엑스에 문을 연 신세계 그룹의 ‘삐에로 쇼핑’이 벤치마킹한 일본 유통사 '돈키호테' 입니다. 돈키호테는 1980년 시작한 이 회사는 ‘고객이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품목을 구분’하고, ‘깔끔하게 진열’하고, ‘가격 신뢰를 위한 정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통념의 반대로만 움직이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던 1990년~2000년 대 장기 불황도 이겨낸 걸로 유명합니다.
당시 경쟁업체는 물론, 유통 시장에서는 돈키호테의 운영 방식을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상품을 찾기 어렵게, 어지럽게 널브러뜨려 놓자, 고객들은 불편함 보다는 보물찾기 게임을 즐기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보냈습니다. 언뜻 연계성이 전혀 없는 상품이라도 돈키호테만의 코드로 진열해 ‘발견’이라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고객들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당연히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돈키호테의 매장은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 여행에서 꼭 들리는 명소로 자리잡았을 정도입니다.

좁고 가득히 쌓아 놓은, 일명 ‘압축 진열’은 사실 재고 관리를 위한 창고 대여비를 아끼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매장의 상황과 유통 환경 등의 변수에 따라 가격을 유동성으로 책정했답니다. 덕분에 수익성 확보가 가능했습니다. 돈키호테의 이러한 ‘상식 뒤집기’ 운영 방식은 확실한 캐릭터가 있다면 온라인 쇼핑몰이 대세가 된 요즘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신세계 그룹이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스타필드 복합몰에 이어 이 콘셉트를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신세계 그룹의 삐에로 쇼핑은 돈키호테의 전략 중 무엇보다, ‘만물상’이라는 콘셉트를 빌려왔습니다. 전자제품부터 장난감, 의류, 각종 주방 집기,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온갖 종류의 상품들에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온라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던 화장품, 식료품 등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고, 그 중에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을 하기도 합니다. 매장 전체를 B급 코드의 장식품과 온갖 판매 문구로 정신 없이 꾸며 방문객의 현실감을 떨어뜨립니다.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실제로 신세계 그룹은 삐에로 쇼핑의 캐치프라이즈를 ‘요지경 만물상’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1020 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는 에뛰드 하우스는 3분 인스턴트 식품 콘셉트를 적용한 ‘3분 케어’ 화장품 시리즈를 선보였고, SPA 브랜드 스파오는 서울우유와 협업해 딸기-초코우유 등의 색을 입힌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패션 브랜드 휠라는 메로나 아이스크림 아이템을 옷으로 만들어 ‘완판’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상거래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에게 단순히 구매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때는 이미 오래 전 일입니다. 고객은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이전보다 다양한 채널을 비교 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메이커의 오프라인 매장은 제품 수령 또는 확인을 위한 자리로 취급 받기도 합니다. B급 감성은 대세이기 전에 취향존중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유통 전략이 아닌, 고객의 필요를 직관적으로 충족할 대응책을 마련한다면 전쟁과도 같은 유통업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소개/고현규
현재 트랜드코리아(TREND KOREA)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베이 소싱 에이전시 케이그룹 대표이사다. 이마트 상품 소싱바이어, LG패션 신규사업팀, 이베이 코리아 전략사업팀 등에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