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
지난 첫 번째 칼럼에서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의 의의와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법리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한 9가지 정황증거인 Read Factors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이 규정하는 8가지 정황증거와 비교하여 검토한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992년 Read 판결에서, 고의침해와 손해배상액의 증액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9가지 정황증거를 나열하였다. Read 판결이 채택한 9가지 정황증거를 Read Factors라고 칭한다.
Read Factors의 9가지 정황증거는 ① 침해자의 고의실시여부, ② 침해자의 선의형성여부, ③ 침해자의 소송행위, ④ 침해자의 회사규모와 재정상황, ⑤ 사건의 미묘함, ⑥ 침해자의 특허침해기간, ⑦ 침해자의 특허권자를 위한 구제행위여부, ⑧ 침해자의 특허침해동기, ⑨ 침해자의 특허침해의 은닉시도여부이다. 이들 9가지 정황증거 중에서 Read Factors ①번 요소인 침해자의 고의실시여부와 Read Factors ②번 요소인 침해자의 선의형성여부가 고의침해판단에서 중요한 정황증거가 된다. 다만 연방순회항소법원은 고의침해여부는 Read Factors 9가지 정황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Read Factors 9가지 정황증거 중에서도 Read Factors ①번 요소 침해자의 고의실시여부, ②번 요소 침해자의 선의형성여부, ③번 요소 침해자의 소송행위는, 1986년 Bott 판결에서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고의침해판단의 정황증거로 이미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를 “Bott Factors”라고 한다. 다만 Bott Factors은 다양한 정황증거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Bott 판결이 선고되고 6년 후 연방순회항소법원이 1992년 Read 판결을 통하여 6가지 정황증거를 추가하였다. Read 판결이 선고된 후, Read Factors는 지방법원이 고의침해를 판단하기 사용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Read Factors가 고의침해판단을 위한 정황증거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방법원은 Read Factors 9가지 정황증거 이외에 다른 정황증거도 고의침해판단을 위하여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지방법원은 하나의 사건에서 9가지 정황증거 모두를 고려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정황증거에 근거하여 고의침해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배심원은 9가지 정황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침해자의 행위에 존재하고 있는 비난가능성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한 후에, 고의침해여부를 결정한다. 이어서 지방법원은 침해자의 특허침해행위가 고의침해로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액의 증액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9가지 정황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침해자의 행위에 포함되어 있는 비난가능성의 정도만큼 침해자에 대한 징벌적인 의미로써 손해배상액을 증액한다. 결국 고의침해판단과 손해배상액 증액정도판단 모두에 Read Factors 9가지 정황증거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Read Factors ①번 요소인 침해자의 고의실시여부는 고의침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정황증거가 된다. 그 이유는 침해자가 특허권이 구체화하고 있는 특허발명을 고의적으로 복제하였다면, 침해자의 행위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침해자는 특허권자로부터 특허권의 존재에 대한 실질적인 통지를 받은 후에 회피설계(design around)를 하였고, 회피설계를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가 당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의로 믿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고의침해를 회피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회피설계행위는 고의침해를 회피할 수 있는 침해자의 중요한 방어방법이 된다.
Read Factors ②번 요소인 침해자의 선의형성여부는 고의침해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황증거가 된다. 그 이유는 침해자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선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면, 침해자가 특허침해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특허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칼럼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법원은 침해자의 선의의 증명방법으로 변호사의 의견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고려하였고, 침해자가 당해 특허권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된 경우에, 침해자가 변호사로부터 받은 의견서에 근거하여 자신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침해자의 행위에 선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의침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 다만 침해자가 변호사의 의견서를 획득하여 고의침해를 회피하려면, ⅰ) 침해자는 “적절한 시기”에 변호사의 의견서를 획득하여야 하고, ⅱ) 의견서를 작성한 변호사는 “적절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ⅲ) 변호사의 의견서에는 “적절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야 하고, ⅳ) 변호사의 의견서를 획득한 자의 “자격과 지식수준”도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적절한 시기와 관련하여서는 침해자는 특허권자로부터 실질적인 통지를 받자마자 변호사로부터 의견서를 획득하였다면, 침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선의를 증명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둘째, 침해자에게 의견서를 줄 수 있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변호사의 전형적인 예는 침해자에게 고용되지 아니한 “기업 외부의 특허변호사”이다. 따라서 침해자가 고용하고 있는 사내변호사는 침해자에게 유리한 의견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 특허변호사가 아닌 일반변호사는 특허법과 특허실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인정된다. 셋째, 변호사의 의견서가 침해자의 선의를 증명할 수 있으려면, 변호사의 의견서에는 침해자가 당해 특허권의 유효성과 침해에 대한 변호사의 판단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넷째, 침해자가 관련 기술분야와 특허법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변호사의 의견서가 관련 쟁점들에 대한 결론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침해자가 이러한 변호사의 의견서에 근거하여 행동하였다면 침해자는 자신의 선의를 증명할 수 없다.
Read Factors ⑤번 요소인 사건의 미묘함, ⑥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기간, ⑦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권자를 위한 구제행위여부는 고의침해와 손해배상액의 증액정도를 모두 판단할 수 있는 정황증거이다. 특히 Read Factors ⑤번 요소인 “사건의 미묘함(the closeness of the case)”이라는 것은 해당 사건에서 특허침해판단이 어려운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경우에는 고의침해가 인정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Read Factors ⑥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기간을 고려하는 것이 고의침해판단에서 중요한 이유는, 특허침해행위의 시작시점에서의 침해자의 행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침해자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ad Factors ⑦번 요소에 의하여 침해자가 특허권자에 대하여 구제행위를 하였다면, 고의침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다만 Read Factors ③번 요소인 침해자의 소송행위, ④번 요소인 침해자의 회사규모와 재정상황, ⑧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동기, ⑨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의 은닉시도여부는 고의침해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황증거가 아니라 손해배상액의 증액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황증거에 해당된다. 특히 Read Factors ④번 요소는 침해자의 증액손해배상액의 지급능력을 고려하는 것으로서, 미국 지방법원 판결 중에는 침해자가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이라면 손해배상액이 2배가 아닌 3배로 증액될 수 있다고 판시한 판결이 있었다. 이와 반대로 한 미국 지방법원은 침해자가 중소기업이라면 손해배상액의 3배의 증액은 침해자의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을 3배로 증액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하였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은 증액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위한 8가지 정황증거, 즉 ① 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②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③ 침해행위로 인하여 특허권자 및 전용실시권자가 입은 피해규모, ④ 침해행위로 인하여 침해한 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⑤ 침해행위의 기간?횟수 등, ⑥ 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⑦ 침해행위를 한 자의 재산상태, ⑧ 침해행위를 한 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를 열거하고 있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1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는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에는 없는 정황증거로서, 만일 침해자인 피고가 원고보다 경제적으로 혹은 사업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경우에 이를 이용하여 특허침해행위를 한 것이 인정된다면, 고의침해와 손해배상액의 증액을 지지할 수 있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2호의 정황증거인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는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 ①번 요소인 “침해자의 고의실시여부”, Read Factors ②번 요소인 “침해자의 선의형성여부”, Read Factors ⑧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의 동기”에 대응하는 정황증거로 판단된다. 우리 특허법상 고의침해에 증액손해배상액을 인정할 수 있는 8가지 정황증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황증거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 정황증거가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칼럼에서 설명하였듯이, 미국에서 침해자의 고의침해의 회피방법으로 침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선의의 증명과 관련하여 “변호사의 의견서”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는데, 증액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된 우리나라에서도 변호사의 의견서는 침해자의 고의침해 회피방법으로 많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변호사의 의견서와 관련하여서는 이 정황증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3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로 인한 특허권자의 피해규모”와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4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로 인한 침해자의 경제적 이익”은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에 대응되는 정황증거가 없다. 이들은 고의침해판단에 이용되는 정황증거가 아니라, 손해배상액의 증액판단에 이용되는 정황증거라고 생각된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5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의 기간?횟수”는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 ⑥번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침해기간”이라는 정황증거에 대응되는데, 고의침해의 판단과 손해배상액의 증액판단 모두에 이용되는 정황증거라고 판단된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6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에 대한 벌금”은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에 대응되는 정황증거가 없다. 이 정황증거에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법리적인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되었던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의 위반에 대한 우려를 최소한이라도 해소하려는 입법정책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7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를 한자의 재산상태”는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 ④ 요소인 “침해자의 회사규모와 재정상황”에 대응되는 정황증거로서, 고의침해판단을 위한 정황증거가 아니라, 손해배상액의 증액을 위한 정황증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 제8호의 정황증거인 “침해행위를 한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는 미국 특허법상 Read Factors ⑦ 요소인 “침해자의 특허권자를 위한 구제행위의 여부”에 대응되는데, 고의침해판단과 손해배상액의 증액판단에 모두 이용되는 정황증거라고 판단된다. 결국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이 언급하는 8가지 정황증거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의 인정판결이 법관의 자의에 이루어질 않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다음 마지막 세 번째 칼럼에서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시행과 관련하여 실무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살펴보고, 우리 중소기업이 앞으로 대처해야 할 방안을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