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컬럼]늘어난 영업비밀 침해 소송, '한국형 e디스커버리'가 필요하다

구재학 프론테오코리아 대표. 프론테오코리아 제공
구재학 프론테오코리아 대표. 프론테오코리아 제공

최근 기업 영업 비밀과 기술 침해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정경쟁방지와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은 852건, 전년보다 41.5% 증가했다. 올해는 10월까지 접수된 사건만 605건에 이른다. 국내 대기업 간 배터리 분쟁과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보톡스 분쟁 등 최근 큰 소송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영업 기밀 보호와 기술 침해 방지에 대한 사회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처벌과 피해보상 규정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특허청은 지난 7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시행을 통해 영업 기밀 보호 기준과 침해 기업에 대한 처벌, 피해보상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선 기술 자립과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 일환으로 혁신 기술 지식재산 보호를 강화하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발표됐다. 특허 침해나 영업 기밀 유출에서 실질적이고 공정한 조사 과정을 도입해 침해 사실과 손해액 입증을 위한 객관 증거 확보 및 현실에 맞는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상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도 중소기업 기술에 대한 침해 행위를 더욱 엄격하게 근절하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본소송 전 증거조사 절차다. 피해자가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분쟁 당사자가 서로 확보하고 있는 증거를 강제로 공개하도록 해서 상대에게 있는 객관 증거를 상호 확인하고 증거 확보와 소송 쟁점을 명확히 할 수 있다. 기술과 특허 침해 소송 시 현재 국내 제도로는 피해를 본 기업이 특허 침해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어렵거나 드러난 증거가 은폐, 왜곡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하면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맞설 수 있게 된다.

현재 디스커버리는 많은 자료가 디지털화됨에 따라 전자증거 개시로 알려진 'e디스커버리'로 확대되고 있다. e디스커버리는 방대한 데이터, 이메일, 이미지, 영상 파일 같은 전자문서로 이뤄진 증거 자료를 제한된 시간 안에 수집하고 검토한 뒤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된다. 미국은 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인공지능(AI) 솔루션을 활용하는 e디스커버리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 형태이며, 민사소송 90% 이상이 이 과정에서 합의로 종결된다.

국내에서도 e디스커버리를 통해 기술 침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보톡스 분쟁을 겪고 있는 국내 기업도 상대방이 영업 기밀을 이유로 국내에서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의 컴퓨터 회사와 특허 분쟁을 이어 온 국내 기업은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e디스커버리 과정에서의 불법으로 저질러진 증거 인멸을 이유로 항소를 진행, 결국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며 합의를 끌어낸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소송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을 비롯한 일부 기업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늘면서 국제 지식재산권 침해 사건도 많아졌지만 대부분의 국내 중소기업은 해당 제도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부족하며, 피해를 봐도 피해 증거자료 제시와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소송에 비적극 형태로 임하고 있다. 또 기업 규모와 구조상 특허 담당자, 법률 전문 인력을 전담으로 두기 어려워 관련 분쟁에 휘말렸을 때 난처한 상황에 자주 처한다.

국내 기업의 기밀 정보와 특허 침해 관련 소송 증가로 관련 법률 및 제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좀 더 실효성 있는 제도로서 '한국형 e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국내 기업의 영업 기밀과 기술 특허가 올바르게 보호받고 그 권리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국형 e디스커버리'가 조속히 도입되길 바란다.

구재학 프론테오코리아 대표 jaehak_koo@fronte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