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89>대한민국 과학기술, 양수겸장 지혜 찾아야

사진: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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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온 나라가 힘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 융합연구단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국내 기업이 개발한 진단키트가 현장에 투입되고 수출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나라에서 연구개발(R&D)을 위해 앞다퉈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국가 경쟁력 제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에서 '삶의 질'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펙트럼의 답변이 있다.

신제품 개발과 공정 개선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전통의 R&D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사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이 건강하고 안전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R&D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의 연결고리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탄탄한 편이다. 우리는 전쟁의 화마를 딛고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경제에 집중시켜야 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이 발표된 지 불과 4개월 후에 발표된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1962~1966년)에서 경제 발전이 과학기술의 제1목표로 설정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 R&D가 본격화된 1982년(특정연구개발사업 130억원) 이래 R&D 예산은 2020년도 24조2000억원(작년 대비 18.0% 증가, 총예산 가운데 4.7%)으로 2000배 가까이 증가했다. 내실로도 우리 과학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자랑스러운 성과를 일궈낸 과기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사진: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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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과기계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려운 나라 살림에도 대폭 증가된 R&D 예산만큼이나 커다란 책임과 역할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연구소가 4만개를 넘고 우리나라 전체 R&D 가운데 76%를 기업이 담당하게 됨에 따라 정부가 중점을 두던 경제 발전 목적의 R&D 가운데 상당 부분을 기업이 독자 수행할 수 있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넘어 국가안보, 재난재해, 신종 전염병,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체육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과 정부 R&D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과학기술 중심 사회에 걸맞은 정부 R&D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도 이런 수요에 부응해 관련 부처가 공동 참여하는 '제2차 과학기술기반 국민생활(사회)문제해결 종합계획'(2018~2022년)을 수립하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사회문제과학기술정책센터'를 설치하는 등 관심과 지원을 본격화하고 있다. 건강, 환경, 재난재해, 주거교통 등 10개 분야 40개 사회 문제를 해결해 '과학기술로 사회문제 Down! 국민행복 Up!'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미래성장 동력 발굴,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과 같은 정부 R&D의 본래 목적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코로나19 같은 새로운 상황과 수요에 대응하는 동안 부족한 부분은 민간 부문과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채워 나가야 할 것이다.

R&D는 미래의 씨앗이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이듬해 농사를 위한 종자를 남겨 두듯 나라 살림이 어려워도 미래의 씨앗인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한정된 자원을 효과 높게 활용해서 '경제 발전'과 '삶의 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숙제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과학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묘수를 기대해 본다.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sskim@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