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9〉영화 제작사와 극장:황야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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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에 이어 두 번째인 시네월드가 NBC유니버설이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유니버설 최고경영자(CEO) 제프 셸이 자사 영화를 극장 개봉과 동시에 프리미엄 주문형비디오(PVoD)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주 어렸을 적 본 '황야의 결투'라는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영화제작사와 극장 간 황야의 결투가 본격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결투는 미디어의 디지털화로 촉발됐다. 지금까지는 피부로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코로나19가 시기를 앞당기고 본격 결투를 하게끔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영화제작사는 극장 개봉 90일 이후 주문형비디오(VoD) 등 디지털 포맷 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을 전통으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극장이 폐쇄되자 유니버설은 '트롤: 월드 투어'를 19.99달러에 48시간 동안 시청하는 PVoD 서비스를 제공했다. 북미에서만 첫 3주 동안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일 뿐만 아니라 PVoD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셸은 평가했다.

영화 산업은 제작물을 극장, VoD,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블루레이, TV 등 정해 놓은 시간 순서나 이른바 윈도에 따라 제공해 왔다. 이것은 영화 산업에서 90년 동안 지속된 관행이다. 시네월드는 “지금도 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다”면서 “규칙을 따른다면 어떤 영화라도 언제나 상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 경영에 주요하게 제공된 근간 가운데 하나가 '밸류체인' 이론이다. 미디어 산업 밸류체인은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인 'CPND'로 정의되고, 미디어 산업은 CPND에 의해 설명됐다. 콘텐츠는 플랫폼에 모아져 네트워크를 통해 가입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플랫폼을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없이 인터넷을 이용, 직접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보내겠다는 것이다. 미디어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금과옥조로 여기던 밸류체인 붕괴가 온 것이다. 코로나19는 이 현상을 가속한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제재로 인해 가정에서 증가한 미디어 소비 시간에 기존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게 됐다. 때마침 지난해부터 본격 시작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경쟁에 코로나19가 기름을 끼얹었다.

미디어 밸류체인처럼 선형 구조 윈도 개념으로 연결된 영화 산업도 원칙이 깨진 것이다. 영화라는 콘텐츠(C)가 극장이라는 플랫폼(P)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시청자(D)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그러니 황야의 결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포비스 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해 영화 산업에 엄청나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을 토대로 지금의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한 디즈니도 극장 산업을 영원히 바꿀 것이라고 한다.

단순한 경제 분석만 하더라도 디즈니가 극장 상영을 위한 영화 제작보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스트리밍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편이 훨씬 낫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더욱더 그렇다. 스트리밍을 위해 제작된 콘텐츠를 디즈니플러스에서 PVoD로 출시한 뒤 DVD와 블루레이 버전으로 제공하고, 이후 디즈니플러스 가입자를 위해 제공하는 것이 경제성을 따질 때 훨씬 이익이라는 것이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성장 모체와 근간이 된 산업을 스스로 파괴하고 바꾸고 있는 것이 지금 미디어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코로나19는 이 현상을 가속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미디어 소비 형태에 대한 우리 추정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이다.

모든 미디어 기업이 엄청난 위기에 처하겠지만 위기를 빠르게 헤쳐 나가기 위해 변화하고 적응하고 진화해야 한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