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누가 그렸는지 아는 사람?! 전시 '빅 아이즈'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

할리우드의 히어로 영화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하나의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코믹스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MARVEL'과 'DC'는 영화계에서도 선의의 라이벌로 경쟁 중이라 할 수 있겠다. 'DC'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슈퍼맨을 주인공으로 하는 '맨 오브 스틸'이라는 리부트 영화에서 그의 연인인 로이스 레인을 연기했던 에이미 아담스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에이미 아담스가 다음 해인 2014년에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는 사실은 아마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에이미 아담스에게 연이여 골든글로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던 영화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빅 아이즈'이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1927년 9월 15일 미국의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Peggy Doris Hawkins라는 여성화가는 우리에게 '마가렛 킨(Margaret Keane)'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영화 빅 아이즈는 마가렛 킨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고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마가렛 킨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다시 한번 안겨준 뜻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팀 버튼 특유의 영상미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영화적인 흥행에서는 참패를 기록한 것으로 기억되는 안타까운 영화이기도 하다. 만약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영화 그 자체와 내용에 집중했더라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영화 빅 아이즈와 동명의 전시로 마가렛 킨을 회고하다

마가렛 킨의 실제 이야기가 담긴 영화 빅 아이즈가 서울의 강남 섬유센터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한 마이아트 뮤지엄을 통해 전시로 재탄생 되었다. 아시아 최초의 마가렛 킨 회고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빅 아이즈 전시는 빅 아이즈와 키치(Big Eyes and Kitsch), 또 다른 자아, 긴 얼굴의 여인(MDH Style, Narrow face woman), 이름을 되찾은 화가(Keane wins Back 'Keane'), 슬픈 눈에서 행복한 얼굴로(From sad eyes to bright child), 킨의 현재와 그 영향력(Recent Works and Keane's Influence)이라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마가렛 킨은 영화와 전시의 타이틀인 '빅 아이즈'에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작품 속 인물의 커다란 눈으로 대명사화된 여류 화가이다. 그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비정상적으로 큰 눈을 가지게 된 연유에는 어린 시절 사고로 마스토이드 수술을 하게 되면서 고막이 영구적으로 손상되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마가렛 킨은 사람들의 눈을 통해 상대를 이해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마가렛 킨은 10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를 위한 유화 그림에서 울고 웃는 두 명의 어린 소녀를 그려냈고 큰 눈과 날개를 가진 천사들의 스케치로 지역 교회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가 되기도 했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하지만 마가렛 킨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당시는 2차 세계대전으로 모두가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고 '여성'들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져 높아질 생각을 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결혼과 출산을 진행하며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차츰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첫 번째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한 마가렛 킨은 딸 제인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쳐 새로운 삶을 이어가면서 생계를 위해 다시 붓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며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고 급기야는 가구 공장에 취직해 판매되는 가구들에 삽화를 그려 넣는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연명한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휴일에는 행사장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며 푼돈을 버는 일을 해나가던 마가렛 킨은 그곳에서 풍경화를 판매하는 월터 킨이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 제인과 단둘이 살아가던 와중 전 남편에게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마가렛은 월터 킨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더 큰 불행이 찾아오고 만다.

별생각 없이 새 남편의 성(姓)인 'KEANE'을 자신의 그림에 대한 표식으로 사용하였던 것이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마가렛의 두 번째 남편인 월터 킨은 그녀의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사람들을 속이며 그림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딸 제인마저도 성장함에 따라 엄마인 마가렛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새아빠인 월터의 그림이라고 여기게 될 만큼 철저하게 그녀가 그림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숨겨왔다고 한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여기까지가 전시의 첫 섹션인 '빅 아이즈와 키치(Big Eyes and Kitsch)'에 관한 내용이다. 그만큼 화가 마가렛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두 번째의 섹션인 '또 다른 자아, 긴 얼굴의 여인(MDH Style, Narrow face woman)'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마가렛이 다른 화풍으로 그려 낸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모딜리아니의 화풍에서 영감을 받은 마가렛의 당시 작품들에는 'KEANE'이라는 표식 앞에 결혼 전 이름인 'MDH(마가렛 도리스 호킨스)'를 붙여 자신의 그림임을 알려왔다. 월터마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마가렛은 그와 이혼하고 1965년에 하와이로 이주한다. 그리고 1970년 샌프란시스코의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월터가 그렸다고 알려진 모든 그림들이 사실 마가렛 자신이 그려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 마가렛 킨의 삶을 통해 곱씹게 되는 여성이라는 존재

마가렛 킨은 현존하는 작가이며 올해 나이 만으로 92세이다. 마이아트 뮤지엄의 직전 전시인 '알폰스 무하展'에서도 도슨트로 활약했던 정우철 도슨트가 주말 도슨트를 진행하는데 그가 마가렛 킨을 '미국 할머니'라고 호칭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빅 아이즈 (BIG EYES : Margaret Keane Retrospective)' 전시는 마가렛 킨이 자신의 그림들을 아니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무렵의 작품들과 1986년 월터 킨과의 재판에서 승소한 이후 행복한 표정으로 변한 작품들 역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이름을 되찾은 화가(Keane wins Back 'Keane')'와 네 번째 섹션인 '슬픈 눈에서 행복한 얼굴로(From sad eyes to bright child)'의 영역에서 말이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며칠 전 '미스비헤이비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전시 빅 아이즈를 떠올렸다.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미스 월드' 대회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미스비헤이비어'의 배경이 되는 연도가 마가렛이 자신이 그림의 진짜 화가임을 주장한 1970년도였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큰 이슈가 되어 왔고 근현대사에 있어 1970년은 전 세계적인 '우먼리브(women’s liberation)' 운동이 현시화된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먼리브와 같은 여성들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마가렛 킨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그림과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과 거짓말이 있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만약 지금까지도 '빅 아이즈'의 그림들이 월터 킨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었다면 우리는 동명의 영화나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을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빅 아이즈' / 사진 : 정지원 기자

마가렛이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되찾지 않았다면 빅 아이즈는 그저 대중 미술 상업화의 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인기 작품에 그쳤을지 모른다.

전시의 마지막인 '킨의 현재와 그 영향력(Recent Works and Keane's Influence)' 섹션에서는 '미국 할머니' 마가렛의 최근 작품들과 빅 아이즈 작품들에 영감을 받은 여러 대중문화 속 커다란 눈을 가진 인물들과 마주할 수 있다.

전시 '빅 아이즈'를 보고 나면 영화 '빅 아이즈'가 보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전시 관람 전에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여성이라면 꼭 전시 '빅 아이즈'와 마가렛 킨의 이야기가 담긴 동명의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성차별적 발언일지 모르겠다. 당신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빅 아이즈' 전시와 영화를 꼭 한번 관람하고 시청해 보면 어떨까 한다. '여성'이라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