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보다 나은 아우, 한지민 · 남주혁의 영화 '조제'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영화 '조제'

1985년 출간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집은 일본의 국민작가로 칭송받는 다나베 세이코가 연애를 테마로 집필한 작품집이다.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2003년 일본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되었다.

그렇게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제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영화 관련 커뮤니티에서 뽑은 '내 인생 잊지 못할 사랑 영화' 1위에 랭크되는 등 최근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명작 중 하나이다.

17년 만에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리메이크되어 12월 10일 개봉될 예정에 있다. 바로 김종관 감독의 영화 '조제'가 그것이다.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인공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작품의 개봉 일정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철수 소식과 함께 알려지면서 업계 전반의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때문에 개봉 전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중 하나로 진작에 꼽아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1957년 작 '한 달 후, 일 년 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조제'를 좋아해 자신의 이름을 '조제'라고 말하는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영화의 제목은 그저 '조제'였다.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원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긴 제목을 왜 '조제'라는 하나의 단어로 바꾸어 리메이크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김종관 감독은 왜 꼭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고자 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은 영화를 직접 보고 난 이후 자연스레 이해되었다.

◇ 입체적으로 발전된 캐릭터와 한국적 정서에 집중한 영화 '조제'

누군가 물었다. 볼만한 영화냐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다.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두 남녀 주인공 캐릭터에 몰두할 수 있었고 비교 따위 역시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 억지스러움과 뜬금없는 전개가 아쉬웠던 원작에 비해 플롯 간의 개연성이 생겼고 부수적인 인물들의 역할을 축소시켜 두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했다.

'영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남주혁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학생, 사회 초년생의 남성을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조제'의 한지민은 그냥 그 자신처럼 느껴졌다. 정말 길고 긴 시간을 자신만의 세상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온 가냘프면서도 생각이 많은 '조제' 그 차체였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스크린 속 화면은 러닝타임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조제'가 사는 집을 구석구석 비춘다. 지나간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켜켜이 쌓여있는 수많은 잡동사니들과 정리되지 못한 채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손때 묻은 집기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그리고 '영석'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조제'의 목소리도 들린다. 자신이 1987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와 부모님은 그 전해인 1986년 베를린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나긋한 어조로 말한다.

마치 공간의 냄새와 공기마저도 느껴지는 듯한 구간을 지나고 나면 항공 샷으로 촬영된 골목이 스크린에 담긴다. 전동 휠체어에서 이탈해 쓰러져있는 '조제'와 그녀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영석'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 된다.

원작에서는 남주인공이 한적한 시간에 유모차를 몰고 다니는 할머니가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직접 그 유모차를 목격하게 되는 것으로 여주인공과의 만남을 표현한다. 솔직히 그 설정을 그대로 차용했다면 상영관을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조제'는 세심하리만큼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살 수 있도록 바뀌었다. 특히나 '조제'를 보살피는 할머니나 '영석'의 여사친의 역할이 원작과는 딴판이 될 정도로 줄어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덕분에 '조제'와 '영석'의 관계성이나 캐릭터의 입체감이 단단해지고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지방대학생의 취업난과 N 포 세대의 연애, 장애인에 대한 편견 등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오롯이 반영하는 콘셉트들도 영화 '조제'가 가지는 또 다른 강점이었다. 지극히 일본스러웠던 원작의 감성을 한국적인 정서로 재해석하고 명확한 시기를 노출하지는 않지만 현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들을 배치해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 형만 한 아우, 아니 형보다 나은 아우. 영화 '조제'

영화 '조제'는 관객들로 하여금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배우 한지민은 '조제' 그 차체를 연기했다.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였던 쿠미코도 이케와키 치즈루도 아닌 '본캐'와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녀의 거짓말 속에서 '조제'는 견고하게 자신만의 가치관을 쌓아올린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성벽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준다.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석'에게 도움을 청하고 곁을 내주고 밀쳐내고 다시 받아들이고 또 떠나보내는 모든 과정이 '조제'가 주체가 되어 전개된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남자 주인공 '영석'을 연기한 남주혁 역시 복잡하고 섬세한 감성을 잘 연기해 주었다. 첫 만남 이후 다시 '조제'를 찾게 되는 이유가 그럴듯한 것이라서 더욱. 치기 어린 방탕함 속에서도 도덕적 회의를 느끼고 본인의 감정에 대한 성찰을 하고자 노력하는 점이 원작과는 사뭇 달랐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면서도 '조제'에게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가고 그녀만의 세상에 속도를 맞출 수 있는 그러한 존재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배우 남주혁의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영화 '조제' 스틸사진 / (주)퍼스트런 제공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호랑이와 단편적이었지만 아름다웠던 스코틀랜드의 풍광, 숙박업소의 가짜 물고기가 아닌 수족관 속의 진짜 물고기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적인 생략과 장면과 장면 사이의 점프가 '조제'의 감정선을 더욱 살려주었다고 생각한다. 극의 흐름은 그대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지우고 시간의 순서도 혼합되어 있지만 감정의 진행을 뒤틀리게 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계절적인 이유로 촬영 시점이 시나리오의 그것과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혀 거슬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도 영화 '조제'에 대해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영화 '조제'는 원작을 대신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어 보고 싶은 작품이 되어주었다. 다음 주인 개봉 첫 주. 다시 극장을 찾아 '조제'를 몇 번 더 만나볼 생각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