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동났다"…韓 주력산업 멈춰설 판

車 이어 전자산업 품귀현상 확산
차량용 MCU 값 20~30배 급등
현대차 울산1공장 일시 중단키로
中企 전자업계도 공급 부족 심각

가전, PC 등 전자 산업 전반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그래픽 카드 등 부품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31일 서울의 한 조립PC 매장에 그래픽 카드와 PC 부품이 진열돼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가전, PC 등 전자 산업 전반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그래픽 카드 등 부품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31일 서울의 한 조립PC 매장에 그래픽 카드와 PC 부품이 진열돼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세계적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에 이어 가전·컴퓨터 등 우리나라 제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부품 가격은 이미 20~30배 뛰었고,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한 현대차마저 일시 공장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전용 반도체 가격도 지난해보다 20~30% 치솟으며 자동차 부품 품귀 현상의 전철을 밟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앞으로 자동차·가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등의 융합기술 발달로 반도체 쓰임새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과 함께 해당 분야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현대차가 아이오닉5<사진>와 코나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가동을 이달 7일부터 14일까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30일 현대차가 아이오닉5<사진>와 코나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 가동을 이달 7일부터 14일까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1차 협력사들이 확보한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의 재고 물량이 오는 5월이면 대부분 소진된다. 당장 5월부터 현대차그룹의 내수용 차량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 유력 부품업체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현대차그룹 1·2차 협력사들의 MCU 확보 물량은 5월 생산분까지”라면서 “구매 물량이 많은 1차 협력사들은 현재 2~3배 가격으로 MCU 확보에 나섰고, 작은 규모의 2차 협력사들은 현재 20~30배 웃돈을 들여서라도 MCU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MCU 주문 후 공급까지 20주가 걸리지만 현재는 50주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이제 막 생산에 들어간 전기차가 미리 부품을 확보한 내연기관보다 심각하다”면서 “납기 지연은 NXP·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가장 길고, 르네사스·인피니언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품귀 현상이 가장 심한 MCU 유통 브로커들이 1~2달러이던 가격을 20~30달러까지 높게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이들이 물량을 갖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MCU는 자동차에서 각종 전장 시스템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차량당 수십개가 들어가기 때문에 MCU가 없으면 차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등 2~3개 업체에서 MCU 기반 각종 제어장치를 공급받고 있다.

미리 비축한 재고 덕에 다른 경쟁사 대비 양호한 상황이지만, 현대차에도 반도체 품귀 여파가 미치고 있다. 실제 울산1공장 가동을 7일부터 14일까지 멈추기로 했다. 일단 일주일 동안 조업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생산을 제때 재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초부터 조업 가동과 중단을 되풀이한 GM, 포드, 토요타에 이어 국내 자동차업계까지 반도체 부족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TV, 가전, PC 등 전자 산업도 '반도체 품귀'가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은 지난해부터 부품 부족 상황에 대비, 현재는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여파가 미칠 수도 있다.

대기업과 달리 국내 중소·중견업계는 당장 심각한 상황에 몰려 있다. 아직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2분기부터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예약 판매를 통하는 등 시간 끌기 전략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가격도 치솟고 있다. TV와 모니터의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용 드라이브 IC(DDI)는 최근 공급 부족으로 지난해보다 30% 넘게 가격이 상승했다. 주요 공급처인 대만에서 1분기부터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소비자 판매가격 인상도 쉽지 않아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가전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MCU, 전력관리 반도체인 PMIC, 무선 주파수 칩 등이 모두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급기야 일부 중견 가전기업은 부품 설계까지 바꾸면서 대처하는 상황이다.

주로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PC업계도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주문량의 10% 정도만 배송받고 있다. 조달사업이 핵심 매출원인 국내 중소 PC업계도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와 산업계가 안정적 수급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구민 국민대 교수는 “현재 반도체 공급 부족은 당장 우리 산업계가 노력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3분기 정도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기존 산업이 AI, 5G, IoT 등과 융합되면서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던 제품들도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어 장기적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