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기의 디지털경제]디지털 경제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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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최근 기업경영과 관련, 우리가 자주 접하는 용어 중에 ESG가 있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다. 글로발 기관과 금융기관들이 ESG 순위를 발표하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등 투자기관들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등의 요인을 재무 성과와 함께 고려하면서, 국내외 기업들이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투자기관의 'ESG 경영' 요구로 최근 삼성물산이 석탄화력발전 관련 신규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했고, 한화는 분산탄 사업을 분리, 매각한 바 있다.

과거 경영이 1970년대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 등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 기초하여 기업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통해 사회적 책무을 달성한다고 보는 것과는 달리, 'ESG 경영'은 '주주 자본주의'가 소득 양극화, 환경파괴 등 여러가지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반성 하에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 공급자, 종업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장기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기초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1990년대 후반 조세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를 중심으로 제안되었고, 최근 ESG의 부각과 함께 다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승자독식으로 표현되는 디지털 경제에서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의 수익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점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대두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전통적인 기업들이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투자해 생산한 물건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과 달리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을 이용해 소비자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러한 데이터를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올리거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서 소비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의 주요 자산으로 인식되고, 공급자는 단순한 부품 제공자가 아니라 플랫폼 서비스의 핵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플래폼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디지털 경제에서 기업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주주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도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접근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2019년 8월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을 포함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 181명이 기업 경영의 목적을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빅테크 기업의 경영이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해서 주주뿐 아니라 소비자, 공급자, 직원, 지역사회 등의 이익을 고려하는 경영을 하고 있을까.

현실을 살펴보면, 소비자들은 검색, 사회관계망 사업자들의 광고 수입에 원천이 되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서비스의 이용대가로 제공할 것을 강요 당하고 있고, 배달서비스의 라이더, 차량공유서비스의 운전자, 숙박공유서비스의 시설제공자 등 흔히 말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종사자들과 iOS,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용체계의 앱서비스 사업자 등은 모두 소비자가 이용하는 본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플랫폼 사업자의 통제 속에 일방적인 조건을 수용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만약 빅테크 기업들이 대외적으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표명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주주 자본주의'의 경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을 포함한 투자자들의 '사회적 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확대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이 소비자, 공급자와 공정하고, 공평하게 동반 성장하는 진정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해본다.

민원기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wonki.min@sun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