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의 모든 것.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비어있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그래피티 아트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문화유산이나 공공시설, 자연경관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인 '반달리즘'과 같은 결을 가지는 그래피티 아트는 국내에서는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그래피티 아트는 공공기관이나 시설물 소유자의 허가를 받아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에 그치고는 한다. 아시아 국가의 뿌리 깊은 유교사상이나 정서를 토대로 보면 미주나 유럽의 그래피티 아트 정신을 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피티 아트가 가지는 독창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작가로는 '뱅크시'가 독보적이지 않은가 싶다. 신원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화가로 예술 분야의 여러 방면에서 의적과 같은 행보를 나타내고 있어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뱅크시의 작품 활동들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는 한다. 최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풍자하는 작품들을 몇 가지 선보인 바 있다. 이제는 뱅크시의 작품으로 보이는 벽화들이 생겨날 때마다 그것이 진짜인지에 대한 글로벌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한 뱅크시는 2016년 1월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멜버른 등 유럽과 호주 11개 도시에서 '아트 오브 뱅크시'라는 타이틀의 월드투어를 진행해왔다. 더서울라이티움 제1전시장에서 오늘부터 내년 2월까지 전시될 예정인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트 오브 뱅크시의 월드투어 국가로는 아시아 최초인 셈이다. 이번 전시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디즈니랜드를 풍자하여 만들어졌던 '디즈멀랜드'가 재현되었다는 점으로 오리지널 소품과 설치 미술들이 대규모로 재구현되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 '뱅크시'가 '뱅크시'한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공항의 입국 심사대를 연상시키는 듯한 게이트가 나타난다. 이것 역시 디즈멀랜드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례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해외로의 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시기 인터라 입구에서부터 환기가 되었고 전시에 대한 기대감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그 기분은 배가 된다. 통상적으로 전시들은 섹션이 구분되어 있고 친절하게 동선을 안내한다. 그러나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는 널찍한 공간에 뱅크시의 작품들이 늘어놓아진 듯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물론 평면으로 구성된 작품들이 액자에 넣어져 벽면에 걸려있고 그 중간의 공간에 입체적인 작품들이 채워져 있는 것은 여느 전시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떠한 순서나 차례와는 상관없이 흩뿌려진 듯한 작품들의 첫인상은 다소 산만한 느낌이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하지만 그런 느낌은 잠시뿐 작품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마다 각각의 존재감에 감탄을 하게 된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빼앗는 다비드 상과 그 뒤 벽에 위치한 영국 여왕의 그림에는 희화적인 의미도 숨어있다고 했다. 벌거벗은 다비드 상의 엉덩이를 바라봐야 하는 여왕이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해 배치했다는 것이다.

디즈멀랜드의 오리지널 지폐와 카탈로그, 풍선, 난민 보트 등의 다양한 소품과 설치 미술 등도 눈에 띈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가로 7m, 세로 4m 규모의 미디어 아트를 통해 디즈멀랜드가 전하는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 밖에도 뱅크시의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해진 기준 같은 것 없이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듯한 느낌이 그 공간마다에 어울리는 작품들로 뱅크시답게 연출되었다는 깨달음으로 바뀌는 기이한 경험도 가능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 큐레이터가 전하는 '아트 오브 뱅크시' 관람 방법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뱅크시'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큐레이터와 전시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큐레이터의 마스크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안산 선수 나의 영웅'이라는 한글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멕시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자국 선수들이 출전한 양궁 경기를 챙겨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안산 선수에 대한 논란도 접한 듯싶었다. 그는 매우 심플하게 안산 선수의 성적은 그녀의 짧은 머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큐레이터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큐레이터 / 사진 : 정지원 기자

어찌 보면 전시와 아무 상관없이 큐레이터의 마스크에 쓰인 한글 일수 있지만 뱅크시의 전시이기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스크를 쓴 큐레이터는 뱅크시의 전시에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동선도 관람 포인트도 작품에 대한 해석까지도 그저 관람객에게 달려있고 하고 하고 싶은 데로 보고 느끼면 그만이라는 설명이었다. 뱅크시가 그러한 사람이고 그의 작품들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예술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며 일탈에 가까운 작품 활동들을 해왔던 뱅크시의 작품들은 전시가 진행될 때마다 같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다르게 연출되고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라는 것도 보는 이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미디어아트 / 사진 : 정지원 기자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미디어아트 / 사진 : 정지원 기자

예술에 대한 삐딱한 시선과 행동을 일삼았던 뱅크시가 각광을 받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무엇을 정해놓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모두가 능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유기적인 결과물을 선보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트 오브 뱅크시' 월드투어 인 서울 전시를 감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뱅크시'의 유명세나 작품의 값어치를 앞에 두기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각자의 감상에 중점을 두어 관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예술에 정답은 없다. 그것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