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3〉근사로 찾는 새 공간

어드제이센트(adjacent). 어딘지 생경한 단어다. '인접한'이란 뜻의 형용사다. '가까운'이란 의미의 니어(near)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문법을 따지면 니어는 동사에 따라붙은 부사다. 그러니 이것의 가장 근사한 단어는 니어가 아니라 형용사격인 니어바이(nearby)여야 한다.

거기다 어드제이센트에는 '공통의 종점 또는 경계가 있는'이란 니어나 니어바이에 없는 의미도 있다. 쉬운 단어들을 놓고 이 긴 단어를 굳이 쓰는 데는 이런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혁신은 인문학이다. 논리보다 직관과 더 친근해 보인다.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직관을 쌓다 보면 일관성이 문득 드러날 때가 있다.

이런 것 가운데 하나가 동시 발견이다. 사실 가만히 보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혁신이 산발한다. 혁신에도 첫 번째 위대한 창조가 있고 모방과 진화가 뒤따른다는 상식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태양의 흑점은 거의 동시대에 다른 4명에 의해 발견됐다고 하니 과학사에는 이런 동시성이 흔하다.

이것은 '가능성의 탐색'이란 제법 그럴듯한 주제를 하나 만들어 낸다. 왜 어느 순간 닷컴 기업은 동시에 출현한 것일까. 공유비즈니스 역시 그랬을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여기에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이 있다. 방문을 열면 비로소 그 문 뒤의 공간이 드러나듯 기회의 창이 열리면 공통의 가능성이 그제야 열리는 셈이다. 닷컴기업과 공유기업 역시 이 방문을 열고 들어간 한 무리인 셈이다.

그럼 기업은 어떻게 이 가능성을 향유할 수 있을까. 프록터앤드갬블은 오랜 기간 청소 원리에 따라 제품을 개발했다. 즉 바닥 청소라 함은 빗자루와 밀걸레로 바닥을 쓸고 닦는다는 것이었다. 이 가정에 큰 문제는 없다. 단지 더러운 것을 닦은 뭔가로 다시 닦는다는 게 왠지 청소의 끝이 아닌 듯 보였다.

이렇게 문제를 보자 가능성은 열렸다. 닦을 게 먼지라면 정전기 청소포를 끼우면 제격이다. 종래의 쓸어 담기를 대체하는 이것은 스위핑(sweeping)이란 새 제품 공간이 됐다. 바닥에 끈적이는 뭔가가 잔뜩 묻었다면 어떨까. 두툼한 청소포에 물기가 있으면 제격이겠다. 손잡이 단추를 눌렀을 때 세정제가 앞쪽 바닥에 뿜어져 나온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러니 물걸레질 대신 마핑(mopping)이란 새 카테고리가 됐다. 벽이나 창틀의 먼지라면 어떨까. 먼지를 떨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대신 먼지떨이에 잘 묻어 나오면 더 나을 법하다. 이렇게 막대 끝에 너풀너풀 정전포를 붙여 더스터(duster)라는 또 다른 범주가 됐다.

밀걸레의 긴 막대기 끝에 뭘 다냐에 따라 새 제품이 됐다. 막대기가 제품 플랫폼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소비자의 불편함을 막대 끝에 담은 셈이기도 했다. 더러워진 것은 버리는 게 가장 깨끗하다는 상식이 연 새 공간이었다.

페이팔이 처음부터 전자결제나 전자지갑으로 개발되지 않았다. 페이팔 최고기술책임자(CTO)으로 있던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의 말이 맞다면 한때 유행한 팜 파일럿이라는 개인정보단말기(PDA)용 소프트웨어(SW)였다. 그러나 결국은 이베이가 3400만달러에 사들여 지금의 페이팔이 됐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묶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큰 무도회장 문을 열면 연결된 여러 방이 보이는 것처럼 공통의 시작점과 경계에 서면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보인다. 거기다 겨우 몇 발짝만 더 내밀 곳에서 찾아지기도 하더라.”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3〉근사로 찾는 새 공간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