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 산업혁명시대, 특허관련 소송은 누가 해야 하나

윤선희 한양대 교수
윤선희 한양대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의 융·복합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우리 삶에도 많은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기술 고도화·전문화로 특허심사에서도 융·복합화된 기술 분야가 등장, 특허청 등에서 융·복합 관련 지식이 있는 심사관을 지속 충원하고 있다. 특허심사의 질도 그에 맞게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특허심사 질 향상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뤄지는 한편에서는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면서 많은 특허가 무효로 되고 있다. 이의 주요인으로는 특허침해소송에서도 법률을 전공한 변호사만이 소송을 담당하고 기술 전문가인 변리사는 특허출원이나 심결사건만을 담당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변호사만이 소송을 담당하는 것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고도화된 기술이 중심인 시대에 부합하지 않게 돼 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상아탑 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0여년 전에 도입된 로스쿨은 전공 학생이 입학해서 학부 전공 지식과 법학 지식을 접목시켜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하자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재 로스쿨에서는 특허법을 비롯한 지식재산권법 관련 과목은 배워야 할 범위가 방대하다는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폐강되기 일쑤다. 변호사 시험에서도 지식재산권법을 선택하는 학생이 다른 선택 과목과 비교해도 가장 적은 편이다.

일부 로스쿨에는 이공계 출신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가 하면, 대형 로스쿨에서도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로스쿨을 졸업한 이후 변호사회 연수나 특허청 연수 등을 통해 특허 등 지식재산권법 관련 과목을 단기간에 이수하는 것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양한 전공과 법률을 융·복합화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하는 로스쿨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셈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변리사가 되기 위한 변리사시험에는 외국과 달리 1차 시험과목에 산업재산권법은 물론 민법과 자연과학개론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2차 시험에서는 민사소송법을 필수 과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변리사로 하여금 특허출원뿐만 아니라 특허침해소송에도 관여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도의 전문지식이 사장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특허 관련 소송에 기여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고도화되면서 특허침해 유형 역시 복잡화·다양화·고도화되고 있다. 이에 발맞춘 국가로 영국은 지식재산기업법원(IPEC)에서 변리사가 단독으로 특허소송대리를 맡을 수 있으며, 소송인가장을 받은 변리사는 대법원의 침해소송까지도 소송대리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과학기술 등을 학부에서 전공하고 우리나라와 같이 로스쿨에 입학해 법학공부를 한 후 주 변호사(Attorney)가 되며, 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전문자격인 특허변호사(Patent Attorney)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전문가만이 특허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은 변호사와 공동으로 특허소송대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중국은 변리사 단독으로 특허소송을 대리한다. 특허침해가 글로벌 이슈가 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과의 특허침해 소송이 발생할 경우 침해 여부 판단에서 해당 기술 분야 전문가인 변리사와 함께 소송대리를 하는 게 유리하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변호사에게만 특허침해소송대리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문과와 이과로 나눠 법률 및 기술을 나누던 시대에서 법률과 기술이 하나로 융합된 시대로 변화했지만 상아탑은 물론 관련 기관조차 그 변화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 상황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국격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술과 법률지식을 고루 갖춘 변리사, 학부에서 기술을 전공하고 로스쿨에서 법학과목 지식재산권법을 이수한 뒤 변호사 시험에서 지식재산권법을 선택해 합격한 변호사는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할 전문성을 보유했다. 이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할 적절한 시기다.

윤선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연구소장) shyu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