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시선]통신비 공약, 관점의 전환

박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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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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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기본료를 폐지해서 기업에 들어가는 돈을 어르신과 사회 취약계층에 돌려드리겠다.”

대선 후보자 신분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4월 기본료 폐지를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본료 폐지 공약은 급박하게 발표가 결정됐다는 게 다수 여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시 문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 문재인 캠프 입장에서는 국민의 눈길을 끌 정책으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캠프는 고심 끝에 이전까지 저울질만 하고 있던 기본료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문 대통령은 당선됐지만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국민 통신비 부담 경감은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당 연간 매출 2조~3조원을 삭감하겠다는 데 반발하지 않는다면 최고경영진은 주주에게 배임으로 고발 당할 처지였다. 시장자유 원칙 침해, 위헌 논란까지 제기됐다. 결국 정부는 법령 테두리 내에서 선택약정할인율을 25%로 인상하고,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통신비 할인율을 높이는 데 주력해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정부가 기본료 폐지 대체 개념으로 추진한 보편요금제는 동일한 이유로 동력을 상실했다.

주요 대선 후보 캠프가 준비하는 20대 대선 통신비 공약은 과거의 실패를 참고해 정교해야 한다. 비싸니 내리자는 식의 단순한 접근을 넘어 보다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통신요금 인하를 넘어 국민의 디지털 이용비 부담 경감, 디지털접근권 확대라는 종합적이고 새로운 관점을 가졌으면 한다. 그동안 통신비 인하 정책은 이동통신사에만 사실상 대부분 책임을 부과했다. 하지만 디지털생태계는 더 복잡·다양해지고, 거대해지고 있다.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는 5G, 기가인터넷과 같은 초연결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실상 국민 필수 서비스가 될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방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과 유튜브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와 같은 디지털 문화에 접근하기 위한 비용 부담 경감을 오직 통신사에만 요구해야 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망 투자재원 분담은 기본적인 문제다. 세계 데이터트래픽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과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유독 망 이용대가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망 이용대가를 받는다고 해서 통신사가 통신비를 인하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통신사는 망 투자 재원을 확보, 적어도 이용자에게 당장에 급격한 통신비 인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보다 직접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기금을 부과해 산업진흥과 국민 복지에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 생태계 영향력이 큰 기업에 기금 재원 등 분담을 요구해서 국민 복지에 활용하는 방향을 우리나라도 고민할 수 있다. 디지털생태계에서 나오는 재원이 확대돼야 그만큼 국민의 디지털 접근권과 혜택도 확대될 수 있다.

미국 법원은 인터넷생태계를 '물침대'에 비유했다. 케이블TV 방송사 차터에 일시적으로 적용했던 '망 이용대가 부과 금지' 인가 조건을 해제하면서다. 물침대는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올라간다. 통신사, 일반이용자,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기업으로 구성되는 인터넷생태계도 물침대와 같다.

이제까지 정부와 정치권은 물침대 구성원 중 통신사를 눌러 이용자 혜택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또다른 생태계 구성원인 글로벌 초거대CP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스타트업을 제외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초거대 CP에 대해서는 이제와는 다른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 혜택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