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레몬마켓' 쓴 맛

영미권에서 '레몬'이라는 단어는 이중성을 상징한다. 샛노란 색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에는 톡 쏘는 신맛이 숨어 있어 얼굴을 찡그리게 하기 때문이다. 오렌지 정도의 달콤한 과일로 생각했다가 크게 베어 먹으면 진저리를 치게 된다.

플랫폼 업계에서 '레몬마켓'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레몬마켓은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경제학 관점에서 만들어 낸 신조어다. 제품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불량품 수준의 저급 제품을 유통하게 되는 현상을 빗대어 설명한 용어이다. 외관은 멀쩡해 보이지만 여러 사고로 내부가 엉망인 차를 속여서 파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중고차 시장이 대표적 '레몬마켓'으로 불렸다. 정보 비대칭성이 근원적 문제다. 결과적으로 정보가 적은 사람이 더 불리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레몬마켓을 플랫폼 비즈니스 기반으로 '피치 마켓'으로 바꾸고자 애쓰는 기업이 많다. 일반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서 합리적이고 주도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ET시선]'레몬마켓' 쓴 맛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 수가가 정해지지 않은 비급여 영역인 미용의료 부문의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강남언니가 탄생했다. 천차만별인 변호사 상담료·선임료, 변호사의 기본 정보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것이 로톡이다. 파급력은 예상외로 컸다. 단기간에 '게임 체인저'가 될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보 비대칭성을 줄여 소비자의 역선택을 최소화해 준 데 따른 달콤한 보상이었다.

견제도 그만큼 날카로워졌다. 대한의사협회는 '강남언니'를 향해, 대한변호사협회는 로톡과 서비스 위법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변협은 최근 로톡 대항마로 '나의변호사'라는 자체 플랫폼까지 선보였다. 민간 플랫폼 업체에 가입하는 변호사 징계에 나섰던 변협이 유사한 서비스를 직접 내놓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T시선]'레몬마켓' 쓴 맛

이보다 앞서 많은 협회·단체가 민간 기업의 사업 모델을 흉내 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직방' 모델과 유사한 '한방'을 내놓았으나 사용의 불편함 때문에 공인중개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한숙박업중앙회는 '착한 숙박앱'을 만들겠다며 '원픽'을 별도로 내놓았으나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민간기업인 야놀자, 여기어때의 10% 수수료와 큰 차이 없는 9% 수수료를 책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협회와 민간기업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정부가 최근 미용의료·법률 광고 등 전문직 플랫폼을 '한걸음 모델' 신규 과제로 선정·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남언니와 로톡이 대상이다. '한걸음 모델'은 이해관계자가 직접 참여해서 신구 사업 간 갈등 해결을 꾀하는 사회 타협 메커니즘이다. 합의를 정부가 중재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행된 한걸음 모델은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의 빈곤한 교섭·중재 능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드러났다. 강제성이 없어서 의견수렴을 권고하는 정도의 흐지부지한 결론만 반복됐다.

강남언니와 로톡이 신규 과제로 올려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레몬마켓에 뛰어든 플랫폼 기업에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갈등을 제때 해소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과 사업 추진의 토대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는 분야다. 합의점을 찾아 반걸음이라도 나아가길 바란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