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자율규제' 실효성

규제 혁파는 새 정권마다 첫손으로 꼽는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자율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한 최소한의 규제를 내걸었다.

자율규제는 선진국에서 많이 채용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역할이나 개입 정도에 따라 자율규제 형식에 차이가 있다. 정부 개입 없이 순수하게 민간에서 운영하는 '자발적 자율규제', 정부의 법적 승인으로 자율규제기구가 만들어지고 규제 권한 일부를 위임하는 '부분위임 자율규제', 정부가 자율규제기구에 권한을 완전 위임하는 '완전위임 자율규제' 등이 있다. 아직 윤석열 정부에서 자율규제 형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어떠한 형태이든 '자율규제'라는 큰 지향점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전보다 기업에 대한 자율성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기조는 문재인 정부와는 반대되는 행보다. 이전 정부에서는 플랫폼의 갑질을 막자는 취지에서 각종 규제를 담은 법안을 쏟아냈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온라인플랫폼이용자보호법, 전자상거래법(전상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그러나 부처 간 규제 관할권 문제로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에서 이들 규제 법안은 재검토될 공산이 높아졌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정권 초기에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영국의 19세기 '붉은 깃발법'을 거론하며 규제 혁신을 수 차례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는 곁가지성 규제만 풀렸을 뿐 많은 규제 법안이 대거 발의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손톱 밑 가시',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봇대론'을 펼치며 규제 개선에 나섰다.

매 정권이 규제 혁파에 나섰으나 우리나라 규제의 벽은 여전히 높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여건(기업관련규제) 순위가 2020년 46위, 2021년 49위를 기록하는 등 조사 대상 64개국 가운데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윤석열표 '자율규제'가 이전 정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첫 단추가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자율규제 관련 민관공동기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실효적인 자율규제 체계를 구축하려면 전담 기구의 지속성과 정당성은 물론 자율준칙의 강제성이 어느정도 확보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온전히 민간에서 주도하기보다는 정부의 균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민간기구의 권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기구에서 정한 준칙이 여러 이해당사자에게 충분히 수용될 수 있도록 정당성도 확보해야 한다. 기구가 정한 준칙에 대해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면 강제성도 담보할 수 있다. 시정 권고 수준에만 그친다면 실효성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기구에서 결정된 결과물이 국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사실상 국회와의 관계가 난제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윤석열 정부가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해 나가는지에 따라 규제개혁 속도가 결정될 것이다. 총선이 있는 2024년까지 윤석열 정부는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규제 혁파는 결코 풀지 못할 방정식이 아니다. 표만 생각하면 야당과 소통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디지털경제 패권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선언을 한 만큼 기구 설립 단계에서부터 야당과의 소통은 물론 논의 결과를 정례화해서 공유하는 등 다양한 소통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ET시선]'자율규제' 실효성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