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모빌리티 핵심은 1억개 이동객체

[ET단상]모빌리티 핵심은 1억개 이동객체

새로 탄생한 윤석열 정부에서 드디어 모빌리티 사업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물류라는 전통적인 산업과 서비스 영역을 한 단계 도약시켜서 새로운 모빌리티(Mobility) 개념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용어 자체로는 단순한 이동성을 의미하는 모빌리티를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해서 표현하면, 움직이는 모든 객체에게 원하는 곳까지 편리하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으로 이동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교통물류 산업에서 한정된 대상이었던 교통수단(즉 대부분 자동차)의 틀에서 벗어나 모든 이동객체를 대상으로 산업 및 서비스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교통물류의 대표적인 인프라인 도로 체계에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해서 혼잡을 완화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기반으로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국토교통부의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 구축사업은 2025년까지 대부분의 고속국도·국도와 일부 도심지 도로를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정책적인 쟁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차량과 차량 간, 차량과 도로 간 정보 연계(V2X)를 위해 C-ITS 전용통신망으로 할당된 5.9㎓ 주파수 대역의 가용 채널에 대한 분배 방식이다. 국토부는 와이파이 기반의 근거리전용통신망(WAVE) 방식으로 WAVE-V2X를 추진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G/LTE와 5G로 발전하는 이동통신 3사의 셀룰러를 기반으로 하는 C-V2X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다행히 해당 두 부처는 내년 말까지 LTE 기반 C-V2X 기술에 대한 현장 실증 절차를 완료한 후 2개 방식을 단일표준으로 추진한다는 합의로 쟁점을 정리한 듯하다. 그러나 도로 인프라에 V2X 설치로 초연결성 기반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해도 두 방식 모두 도로상의 자동차만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차량이 다른 차량 및 도로와 통신하기 위해서는 차량 내부에 V2X 단말기를 달아야 한다. 지난 4~5년 동안 C-ITS 사업이 고속도로와 몇몇 도시에서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되면서 자발적 참여자 중심으로 차량 2만~3만대에 단말기를 보급하기는 했지만 단말기 보급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됐다. V2X 기반 도로 인프라 디지털화의 명분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톨게이트에 무정차로 통과하는, 단순하지만 킬러 서비스 효과가 있는 하이패스처럼 약 2000만대의 차량에 단말기를 중장기적으로 보급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자율주행차 기술 보급이 확대되면서 차량이 스스로 도로와 협력, 안전하고 편안하게 주행하기 위해서는 C-ITS 도로 인프라와 차량단말기 설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2500만대의 차량 중심 개념에 매몰되어 있어 단말기 확대를 통한 서비스 확장성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교통사고 통계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3000명 이하로, 차대차 사고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많이 줄었지만 보행자 사망은 40% 이상으로 여전히 선진국 대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볼 수 있다. C-ITS 사업을 통한 도로 인프라의 디지털화 초점을 차량에서 보행자와 자전거 등 개인교통(PM)을 포함하는 도로교통약자(VRU)로 전환할 명문이 여기에 있다, 한국형위성항법장치(KPS) 개발을 통한 m급 정밀 측위를 VRU의 안전 정보로 제공하는 명분도 더해질 수 있다. 포괄적 개념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도록 5000만 국민보행자, 2500만 PM, 2500만대 차량을 모두 포함하면 1억개의 이동 객체가 모빌리티 서비스 대상이 된다.

최근 유럽에서도 차량 중심의 V2X 개념을 VRU2X로 전환하여 자율주행시대의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고용량 초고속 정보연계 서비스를 모든 도로인프라 구간에서 차량 중심으로 만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든 이동객체에게 각각의 목적에 맞는 정보연계 서비스를 모든 도로인프라 곳곳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고속주행이나 교통량 혼잡 구간에서의 정보 연계는 차량에 초당 10회 이상의 정보 연계가 요구될 수 있지만 스쿨존 등 어린이보호구역 저속 구간에서의 정보 연계는 초당 1회 정도면 충분하고, 차량뿐만 아니라 보행자와 PM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며 친환경적인 교통환경이 만들어진다. 결국 VRU2X 개념으로의 정책 전환은 1억개 이동 객체를 대상으로 기존 C-ITS 전용통신망과 이동통신망을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융합형 도로 인프라 디지털화 표준 추진을 견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당 산업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국토부와 과기부 두 부처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문영준 한국교통연구원 SOC디지털연구센터장 yjmoon@ko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