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옹호하다 밥줄 끊긴 '오페라의 여왕' 네트랩코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사진=위키피디아 커먼즈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사진=위키피디아 커먼즈>

‘클래식계의 비욘세’로 통하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조국인 러시아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양쪽에서 외면 받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네트렙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에서 퇴출당했다가 최근 미국 무대 복귀를 추진하고 있으나, 그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먼저 네트렙코를 퇴출한 메트는 복귀 조건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종식과 진심 어린 반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친푸틴’ 행보를 보여온 네트렙코에 이행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며 거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이에 따라 네트렙코는 뉴욕의 카네기홀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과 접촉해 미국 복귀 무대를 제안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 특히 뉴욕 필하모닉 측은 "지금까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네트렙코와 굳이 지금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할 것 같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클래식계의 최고 스타로 알려진 네트렙코가 찬밥신세가 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그가 보인 태도 때문이다.

네트렙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라는 여론에 밀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전쟁 반대 메시지를 게시했지만 “예술가나 공인에게 조국을 비판하고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내세우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글을 덧붙였다. 또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눈먼 침략자만큼 사악하다”고 표현해 공분을 샀다.

특히 그는 푸틴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확산한 지난 3월 초 자신의 음반을 발매하는 독일의 레코드회사 도이체 그라모폰의 경영진에 푸틴이 나오는 TV 화면 앞에서 술잔을 든 사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여론은 푸틴에 대한 지지 의사로 해석하고, 네트렙코는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았다.

실제로 네트렙코는 독일 디자이트와의 인터뷰에서도 "푸틴은 아직 러시아의 대통령이고, 난 아직 러시아 국민"이라며 "러시아 국민은 누구도 푸틴을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푸틴을 옹호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에서 그의 공연을 잇따라 취소되자 네트렙코의 심경에는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안나 네트렙코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안나 네트렙코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그는 위기에 처한 유명인들을 위한 홍보회사를 고용했고, 자신을 퇴출한 메트에 대해서는 노동계약과 관련한 민원을 내기도 했다. 또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친푸틴 인사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기획한 러시아 공연을 취소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정치에 대한 발언을 중단했다.

지난 3월에는 “난 푸틴을 몇 번 만났을 뿐”이라며 푸틴과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네트렙코를 향해 ‘반역자’라는 비난이 나왔다. 미국뿐 아니라 조국인 러시아에서도 입지가 좁아진 셈이다.

일반 팬들 사이에서의 평판에도 문제가 생겼다.

네트렙코는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파리와 모나코 등에서 공연을 재개했지만, 공연장 주변에서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파리 공연에선 극장 바깥에서 "네트렙코는 침략의 공범"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4월 모나코 공연에선 한 관객이 공연 도중 일어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항의를 쏟아낸 뒤 퇴장하기도 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