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축적된 데이터는 기업 혁신 독이 될지도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일상이 모두 데이터화되는 시대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용품 구매 데이터가 생성되고, 쇼핑몰 배송지 주소를 바꾸면 그동안 살아 온 동네가 모두 기록된다. 네이버 카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도 고객 데이터가 넘쳐난다. 심지어 고객이 특정 상품을 경험하며 느낀 바를 SNS에 글과 사진으로 올리는 생생한 후기도 모두 데이터가 된다. 고객이 어떤 검색어를 입력하고 어떤 페이지를 방문하고 어떤 링크를 클릭하는지 모든 게 데이터화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기업은 클라우드, 데이터 레이크와 같은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기업 혁신을 위해 고객을 360도로 이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는 필수다. 기업은 일단 조직 안에 존재하는 고객 데이터를 한곳으로 모아 분석하면 뭐든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데이터를 쌓아 놓으면 혁신 가치가 쏟아질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데이터가 혁신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한때 세계 핸드폰 시장 1위이던 노키아는 중국 현지에서 조사한 질적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회사 안에 쌓여 있던 빅데이터를 분석, '스마트폰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열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지 않았고, 결과는 참혹했다.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게 다수 기업의 데이터 경영 분위기다. 노키아 사례를 돌아보자. 클라우드에 쌓인 데이터가 과연 고객 가치를 가져다 주는 올바른 데이터인지 살펴봐야 한다.

많은 빅데이터 전문가는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혁신에 이르는 새로운 가치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진 데이터에서 시작하면 오히려 혁신의 '독'이 된다. 그보다는 풀고 싶은 문제, 달성하고 싶은 혁신의 정의가 먼저다. 해결하고 싶은 고객 문제, 뚜렷한 목적 설정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다음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를 찾아야 한다. 문제 해결에 데이터가 필요하면 새로운 데이터 센싱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필요한 데이터가 수집할 수 없는 데이터라면 외부에 존재하는 데이터와 결합해서 데이터 센싱 전략을 완전히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 안에 이미 쌓여 있는 데이터에서 시작하는 빅데이터 프로젝트 그 자체로는 혁신이 되기 어렵다. 빅데이터는 뚜렷한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에 불과한 빅데이터 플랫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설정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무작정 쌓은 데이터 때문에 클라우드 비용만 커지고 대부분 데이터가 쓸모없는 다크 데이터가 되고 만다.

빅데이터가 다크 데이터화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목적성 없이 설계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디바이스 데이터 수집·설계를 고려할 때 데이터 엔지니어가 어떤 비즈니스 가치와 연결시킬지, 어떤 고객 혁신을 달성할지 등을 충분히 고민했을까. 미리 목적을 두고 센싱 계획이 수립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또 데이터 사일로 현상이 있다. 비즈니스 규모가 커지면 업무는 분업화·시스템화되면서 시스템마다 데이터 양이 커진다. 동시에 파편화된 데이터의 복잡성은 점점 악화한다. 내부에 쌓인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연결되지 않으면 가치 있는 인사이트가 나오지 않는다. 정리돼 있지 않은 형태의 데이터로 조직의 단절된 저장소에 흩어져 있어서 누구도 활용할 수 없는 다크 데이터가 되고 만다. 데이터는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큰 가치를 발휘하기 어렵다.

조직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 부족도 문제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 관점에 따라 가치 있는 데이터가 되기도 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오랜 기간 해당 문제를 고민했고 관련 도메인 지식을 충분히 갖춘 현업 담당자의 데이터 분석 역량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데이터 레이크, 클라우드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인력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는 데 투자해야 할 때다. 어떤 데이터가 결합되고 어떻게 시각화해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지, 어떤 인사이트가 현업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스며들지를 기획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 내부 데이터 관련 조직은 성과를 스스로 내기보다 현업 부서가 내도록 돕는 서비스 조직이 돼야 한다. 분석할 때 연결할 데이터가 있으면 데이터를 결합하고. 쓸데없는 데이터를 지우고 전처리하는 데 시간 낭비를 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조직의 전체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끌어올리는, 즉 데이터를 혁신의 '독'이 아니라 '득'이 되도록 활용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kjcha7@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