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초미지급(焦眉之急)의 한국경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30일을 넘어섰다. 정권이 교체되고 통상 이맘때쯤이면 정부의 경제정책 로드맵이 선명해진다. 그에 따라 경제 주체들의 인식에 경기회복이라는 기대감이 살아나기 마련인데 현재 상황은 정반대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

경제성장률을 두 배 이상 상회하는 물가 급등과 이에 동반한 금리 상승으로 시장심리는 물론 실물경제까지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정부가 어떤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로 말미암아 누적되고 있는 피로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주가는 주저앉고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경제성장 전망치를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0.6%포인트(P) 낮은 2.4%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년 동안 저조한 실적을 감안한다면 경기회복이 아닌 사실상 경기후퇴에 가까운 수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오랜 시간 약화한 시장경제의 기틀을 재건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만하게 운영된 재정의 기초를 다시 닦아서 국가부채를 줄이고, 기업활동을 가로막아 온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만시지탄이긴 하나 환영할 만하다.

그럼에도 우려가 앞서는 이유는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정부의 재정 건전화나 몇몇 사안에 대한 규제 완화 정도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세계적인 둔화 흐름 속에서도 경기회복의 기류를 일으킬 수 있는 경쟁력과 부양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기 위축 흐름을 성장 흐름으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이는 다시 소득과 소비 증대를 유발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견인할 원동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반(反)성장적 경제 인식의 만연이라 할 수 있다. 10년 넘게 지속된 반기업적 경제 민주화는 그 정책 목표인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는커녕 기업의 투자 의욕만 저하되는 비이상적인 결과만을 초래했다. 그와 동반해 최근 5년 동안 도가 넘는 복지정책 위주의 재정정책은 한국경제가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지식서비스 강국으로 변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생산성 증대에서 시작한다는 게 지금으로선 절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해 온 대외부문 역시 어두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수출이 반도체 등 주요 품목 중심으로 호조세를 지속하고는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수입이 더 빠르게 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행진을 하고 있다.

특히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견인해 온 수출에 하방 리스크로 작용하면서 무역수지 악화를 더욱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올 하반기에도 급속도로 진행될 경우 외국인의 자본 유출은 물론 추가적인 환율 인상으로 무역수지 적자 폭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은 생산, 투자, 소비, 대외여건 등 모든 면에서 위태로운 상황이다.

정부는 정경분리의 확고한 원칙 아래 경제 회생을 위한 선명한 로드맵을 제시, 경제 도약 비전과 희망이 경제 주체들에게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시장 질서 재건을 통한 경제 정상화에 대한 중장기적인 청사진은 물론 극에 달해 있는 민생의 피곤함을 위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경제 주체들은 비로소 희망을 되찾을 것이다.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위기 상황을 극복할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업과 가계도 희망을 내려놓지 말고 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욱 어렵던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은 소수 엘리트 집단이 만들어 낸 정책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하며 온 국민이 똘똘 뭉쳐서 최선을 다해 이뤄낸 결과였음을 되새겨야 할 때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 seung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