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대비 필요한 美 바이오패권 선언

미국이 바이오산업 패권을 거머쥐겠다고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바이오 이니셔티브'를 강조했다. 반도체, 배터리에 이어 국가 전략 자원을 내재화하겠다는 것이다. 타이밍을 보면 올해 초 중국이 바이오산업 육성 계획을 들고나오자 미국이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산업 낙수효과를 자국 안에서 온전히 흡수하겠다는 계산도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산업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는 가운데 세계 바이오산업도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들여서 바이오산업 생산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산업에서 덩치가 가장 큰 의약품을 필두로 에너지, 농업, 재료 등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진이 의약품 생산 관련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진이 의약품 생산 관련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세계 바이오산업 규모를 고려하면 20억달러라는 금액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금액보다 더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은 미국에서 상용화되고 생산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바이오 이니셔티브' 원칙과 기조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부 바이오산업 투자 방안을 발표하며 “해외에서 우리의 지정학적 비교우위를 유지·강화하려면 국내에서 국력의 원천을 채우고 재활성화해야 한다”면서 “생명공학(바이오)이 이 노력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바이오산업을 안보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기조를 거스르기란 불가능하다. 미국이 '바이오 이니셔티브'를 공식화하기 전에도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은 미국 진출을 타진해 왔다. 성장을 위해서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직접 공략해야 할 필요성이 컸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하는 대기업부터 후보물질의 '라이선스 아웃'(자사가 보유한 기술·물질·제품·특허·노하우 등 권리를 타사에 허가하는 것)을 노리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까지 최종적으로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전개해 왔다.

바이오 이니셔티브는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미국 진출 길이 열리는 한편 무한 경쟁의 시작을 알린다. 변화를 극복하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일본처럼 지식재산권과 원천기술은 있지만 바이오산업에서 잠복해 있는 다크호스가 급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실 진짜 문제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답을 찾아낸다. 정부는 이런 기업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물밑에서 해결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걱정이 마냥 기우만은 아니다. 한 가지 예만 들어 보자. 미국 정부는 지난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한국산 전기차(현대·기아)를 제외했다. 바로 직전인 5월 바이든 대통령이 현대그룹의 미국 투자에 대해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며 치켜세웠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이후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나라 정부의 외교라인에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급히 미국을 방문하는 등 민간이 뒷수습에 나섰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바이오산업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정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김시소 기자
<김시소 기자>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