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꺼진 PC도 다시 보자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를 주제로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를 지겹도록 한 기억이 생생하다. 교실은 물론 복도 등 학교 곳곳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불조심 표어와 포스터가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화재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은 거의 없었다. 불장난도 숱하게 했다.

20여년 전 화재로 말미암은 공포감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한 적이 있다. 빌라 아랫집 화재 당시 복도에 가득찬 유독가스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거의 1개월 동안 매케한 냄새가 진동하던 사실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경험이 아니었다면 현재까지도 화재에 대한 생각은 초등학교 시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귀가 따갑게 들은 게 '불조심'이었다면 요즘 지겹게 듣는 건 '랜섬웨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신고된 랜섬웨어 피해 건수가 지난해 신고 건수를 넘어섰다.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신고되지 않은 피해를 감안하면 랜섬웨어 창궐의 심각성이 짐작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귀신'(GWISIN)이라는 랜섬웨어도 등장했다.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규모와 상관없이 기업에 가장 큰 리스크 가운데 하나가 랜섬웨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한다. 랜섬웨어에 감염되면 고객 정보와 영업비밀 및 독점 정보 등 핵심 정보 유출, 서비스 중단 등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금전적 피해도 뒤따른다.

랜섬웨어를 이용한 사이버 공격이 지능화·고도화되는 등 갈수록 사회·경제적 피해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는 경고가 괜한 말은 아닌 거 같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진부한 표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나 깨나 랜섬웨어 조심'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화재도, 랜섬웨어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불가피하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상책이다.

사고는 예고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고는 항상 발생하기 이전에 징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징후를 포착해서 대비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징후를 간과하고 특별한 일이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태도는 재앙을 초래한다.

폭우와 태풍 등 천재(天災)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사전 대비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인재(人災)도 마찬가지다.

화재든 랜섬웨어든 발본색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실로 수용해야 한다. 철저한 사전 대비와 신속한 복구, 피해 최소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고가 발생한 이후 원인을 찾아보면 '점검·관리 소홀' '규정 미준수'는 공통 사항이다.

누구나 화재 예방책은 숙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랜섬웨어 예방책을 숙지하고 실행해야 한다. 회사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랜섬웨어의 주요 감염 경로로 지목되는 스팸성 이메일 열람과 불건전 사이트 방문부터 자제해야 한다. 큰 불이 작은 불씨에서 발화되듯 랜섬웨어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부주의가 조직에 미치는 해악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게 분명하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전환과 뉴노멀이 회자되고 있다. 과거에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화두였다면 디지털전환·뉴노멀 시대에는 '꺼진 PC도 다시 보자'를 화두로 할 필요가 있다. 캠페인이라도 해야 한다. 구호로 그쳐서는 안된다.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없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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