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영차, 떼구르르"…공놀이도 즐길 줄 아는 호박벌

"먹이보다 공을 먼저 선택한 벌도 있어"

나무공을 가지고 노는 호박벌. 사진=리처드 리킷
<나무공을 가지고 노는 호박벌. 사진=리처드 리킷>

통통한 몸의 짧은 날개, 귀여운 생김새로 사랑받는 호박벌(뒤영벌과)이 포유류나 조류처럼 나무공으로 놀이를 즐길 줄 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CBC 등에 따르면, 런던 퀸 메리 대학 연구팀은 호박벌이 생존적 보상이 없음에도 단순히 즐거움만을 위해 나무 공을 굴리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학술지 '동물행동'(Animal Behaviour)에 발표했다.

당초 진행된 연구의 목적은 달달한 음식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목표 지점까지 공을 굴리는 것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호박벌들이 보상이 없음에도 공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나무 공을 단 한 번만 굴리고 만 개체가 있는가 하면 많게는 117번이나 굴린 개체도 있었다.

이에 연구진들은 한 공간에 수크로우스와 꽃가루 등 먹이와 나무공을 넣어 놓은 공간에 45마리의 호박벌을 풀어놓고 관찰하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먹이는 놀이에 대한 포상이 아닌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그러자 호박벌 한 마리가 공 쪽으로 다가가더니 두개의 앞발을 공 위에 올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공을 굴리기 시작했다. 어떤 개체는 여섯 개의 다리로 공을 안고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연구진은 작은 병이나 정육면체 블록도 제공했으나, 호박벌의 취향에서 탈락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박사과정 대학원생 사마디 갈파이지는 “벌들은 공을 가지고 회전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장난감을 짝짓기 대상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수컷과 여왕벌만이 생식활동을 하는데, 이에 관여하지 않는 암컷벌들도 수컷과 함께 놀이에 참여했다. 놀이 과정에서 수컷의 생식기가 밖으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또, 공간의 색깔을 바꾸고 새로운 개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호박벌들은 공놀이를 즐겼다. 색깔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특히 젊은 개체가 늙은 개체보다 공을 더 많이 굴리는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린아이나 새끼 포유류와 조류가 가장 활동적으로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또 수컷 벌이 암컷보다 더 많은 시간 공을 갖고 노는 것으로 나타났다.

갈파이지는 “호박벌들은 이 ‘장난감’에 계속 달라붙어 놀았다”면서 작은 몸집과 두뇌에도 초보적이기는 해도 다른 큰 동물들처럼 일종의 긍정적 정서 상태를 경험하는 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결과는 곤충의 지각과 복지를 이해하고 지구상의 생명체를 더 잘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고무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이끈 감각·행동 생태학 교수 라즈 치트카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곤충의 지력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다는 점을 강력히 나타낸다”면서 “곤충은 전통적으로 생각도 감각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생물과는 아주 거리가 멀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입증하는 증거를 추가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사진=사마디 갈파이지 유튜브>

이 같은 행동은 호박벌들이 먹이를 구하는 과정과도 연관이 있다. 레스브리지 대학에서 벌 행동을 연구하는 생물 과학 연구원 셸리 후버는 “벌, 특히 호박벌은 다양하고 복잡한 꽃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꽃의 ‘퍼즐’을 풀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을 통해 좋은 먹이를 찾는 것. 놀이는 배움과 관련있다”고 설명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