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이달 1일 대통령 주재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 시 행·재정적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해서 자율성을 부여하고, 예산의 50% 이상을 지자체 주도로 집행할 수 있도록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는 지역 실수요에 기반을 두고 지역대학 지원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인구 감소, 인재 유출 등으로 공통 위기에 처한 지역 및 지역대학이 상생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기존에는 평가부터 성과관리까지 중앙에서 주도하던 것과 비교하면 보도자료 제목처럼 '대학지원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 부를 만하다. 연구개발이나 인력양성에 대한 정부 지원 시, 혁신 주체들의 자율성을 기초로 다양한 원천기술과 사업모델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선진형 정부지원 체계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지역 문제는 일자리와 정주 환경 등이 수도권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한 데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에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대학과 기업 등 여러 혁신 주체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다. 따라서 먼저 선진국은 이른바 지역혁신체제(NIS)라는 총체적 관점의 혁신 정책을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철저하게 지역 및 지역대학 중심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수요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정부 사업 수주를 위해 어느 지역에나 적용될만한 개념과 해결방안은 지양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사립대로서 재정적 문제에 봉착하자 내부 논란에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지식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실용 노선을 선택, 실리콘밸리에 초석을 놓았다. 핵심 역할을 담당한 프레더릭 터먼 교수는 아예 대학 부지 일부를 공업용지로 전환하고 기업을 유치했다. 독일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강 위주의 기존 산업이 쇠퇴하고 환경오염이 심화하는 등 지역 경쟁력이 저하하자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대학과 기술이전센터를 설립해서 지역대학 신기술을 활용하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정보통신·생명공학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역 혁신 범위를 해당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하지 않는다. 독일의 탁월 클러스터 및 대학(EXC&EXU) 프로그램을 보면 지역의 대학과 기업을 지원할 때 지역 수요를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연구개발(R&D) 분야와 주제를 선정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교육부가 역량 있는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선정해서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둘째 정부 지원이 끝나도 지식이 지속적으로 확산·활용될 수 있는 연구생태계 조성은 필수적이다.
단순히 지역 내에 훌륭한 대학이 있다고 혁신이 일어나진 않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3개 명문 대학이 뛰어난 R&D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담배·섬유 등의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우수한 연구 인력이 지역 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지역에서는 기금을 조성해서 연구지원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는 등 혁신 환경을 구축하고 국립 연구소와 IBM 등 대기업 연구소를 유치함으로써 발전 계기를 마련, 오늘날 산·학·관 혁신 클러스터의 대명사가 된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가 탄생할 수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민간 연구개발 및 기술이전 전문기관인 슈타인바이스 재단도 참고할 수 있다. 주로 민간기업이 의뢰한 R&D 프로젝트를 대학 등이 수행하게 하는 중개자 역할이다.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100% 민간 재원으로 운영되는데,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 다수가 이 재단을 통해서 배출됐다.
셋째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환경 조성과 관련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했다. 프랑스의 소피아앙티폴리스는 계획적으로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했음에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긍정적 변화가 시작됐다. 프랑스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특성을 살려 클러스터 조성 초기부터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학과 경제에 문화가 조화된 클러스터를 지향했다.
특히, 여러 민간협회가 중심이 돼 새로 유입된 인력과 가족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공항에서 맞이하고 현지 생활에 필요한 정보나 스포츠·문화행사를 통한 만남 기회를 제공하는 등 물밑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지역혁신체제는 국가나 지역 사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우리도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대덕연구단지 성공사례가 있고, 지역마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특성화대와 국립 거점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정책도 그 자체만으로 완벽할 수 없다. 혁신의 관건이 끊임 없이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듯 새로운 정책과 대규모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키워 간다면 지역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hahaha@nrf.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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