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은행 횡재세'로 고금리 고통이 은행 돈잔치 되는 일 막아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예금은행 예대마진·기준금리 추이

은행들이 2022년도의 괄목할 실적 향상으로 임직원에 대한 고액의 상여금 잔치에 나섰다. 고금리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은 울분을 삼켰다.

4대 금융지주회사의 2022년도 순이익은 16조5200억원으로, 최대치를 경신한 2021년도의 14조5400억원보다 13.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액의 상여금 잔치에 정치권의 비판 강도도 거세졌다. 여당의 한 인사는 은행의 예대마진 확대를 “서민의 피를 빨아서 배를 채우려는 저열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평소 자유 시장의 미덕을 강조해 오던 대통령의 입에서조차 '금융의 공공재적 성격'이 언급되기도 했다.

은행의 초과이윤에 횡재세를 부과해서 세수를 금융 취약계층 지원 용도로 사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필자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행태에 두 번 놀랐다.

우선 평소에 시장 자유를 남다르게 강조해 오던 정치 세력이 전체 수익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은행의 '이자 장사'를 상당히 강한 반시장주의적 어법으로 비난하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이후 나온 해법이 오히려 은행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큰 시장주의적 해법으로 반전되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정부의 해법은 전문은행의 시장 진출을 확대해서 은행 간 경쟁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은행 부문에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와 지배 금지,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같은 진입장벽을 마련한 것은 은행의 기존 과점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산업 및 거시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의 중요성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도 은행업을 아무나 할 수 있도록 개방하지 않는다. 진입장벽을 허무는 것은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라는 중대한 금융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정부의 시장주의적 해법이 은행의 예대마진 확대와 고금리 비난의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금산분리 규제를 상당 부분 허물며 등장한 3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현재의 고금리 상황을 막는 데 과연 유의미한 시장경쟁 압력으로 작동했는가? 결국 고금리 이자 장사를 비난한 진정한 속내는 금융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금융시장 자유화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입 규제 완화가 아닌 횡재세는 현재 화두가 된 금융 공공성을 강화할 중요한 수단이자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은행의 놀라운 실적 개선이 횡재세에서 말하는 '횡재'임을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대마진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따라간다. 2021년 기준금리 1.25%에서 예금은행의 예대마진은 신규취급액 기준으로 1.8%포인트(P)였다. 잔액 기준 2.24%다. 기준금리가 3.5%에 이르른 2023년 1월의 예대마진은 신규취급액 1.63%P로 오히려 줄어든 반면에 잔액 기준으로는 2.58%P로 늘어났다.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 신규예금에 대해서만 인상된 예금금리가 적용되고, 대부분 예금에 대해서는 고정금리가 적용된다. 반면에 대출금리는 기존 대출에 대해서도 인상된 시장금리가 적용된다.

기준금리를 따라가는 예대마진 결정 구조에서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지난해 은행들의 역대급 수익은 은행의 금융 상품 경쟁력이나 은행 내부의 경영 기법 혁신과 무관하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시대 도래와 이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외부 경제 환경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다. 즉 횡재 이득이다.

둘째 은행들의 예대금리 확대, 특히 고금리 대출을 비난한다는 것은 금융 '시장'에서 결정되는 은행 이자율 결정에 공공의 '제도적' 개입을 일정하게 허용하는 것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비난이나 윤리적 훈계로 기업에 수익을 자발적으로 줄이도록 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 가치 체계에서 이는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이나 은행의 대출금리 결정에 공공이 직접 개입하는 정책 수단을 마련하기란 사회적 합의 수준으로 보나 금융 정책 결정자들의 반발 수준으로 보나 현재로선 지난한 과제다.

[ET시론] '은행 횡재세'로 고금리 고통이 은행 돈잔치 되는 일 막아야

횡재세는 현시기에 그나마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를 보장한다. 특히 금융 공공성 강화라는 더 큰 과제로 나아가는 계기로서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유럽에서 횡재세는 석유가스 사업자 및 전력사업자에 집중돼 있지만 은행 횡재세도 확산 조짐을 띠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은행 횡재세 도입 법안을 처리했고, 올해 2월 대형 은행들의 첫 횡재세 납부가 있었다. 헝가리 은행들은 2022년 은행 부문 순이익의 37%에 해당하는 2500억 포린트의 횡재세 납부가 예정돼 있다. 체코 하원은 2018~2021년 평균을 120% 초과하는 이윤에 대해 2023년부터 3년 동안 60%의 세율로 과세하는 횡재세 도입 소득세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통과시켰다. 이는 기존 19% 법인세에 더해 추가로 부과된다. 리투아니아 중앙은행 총재 겸 재무부장관은 지난 2월 초 은행 횡재세를 부과, 세수를 국방비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필자를 필두로 올해 은행에 횡재세 성격의 세금이나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횡재세 찬반 논란은 지난해 정유사에 이어 올해는 은행 중심으로 거세질 것이다. 횡재세 반대론은 정유사에 대해서든 은행에 대해서든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에서는 공통적일 것이다. 미리 말한다면 횡재세는 현재까지 제기된 여러 금융 공공성 강화 방안 가운데 가장 친시장적이다.

지역 주민과 기업들의 은행 접근성을 높이는 지역 공공은행 설립, 저신용등급 계층의 시중은행 대출 접근권 보장, 소비자 금융 축소와 산업 대출 확대 같은 것들이 오랫동안 한국 금융의 공공성 강화 방안들로 제안돼 왔다. 횡재세는 은행의 이자율, 대출 고객 결정 등에 대한 공공의 제도적 개입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친화적이다. 다만 횡재세는 국민의 고금리 고통이 은행에는 전례 없는 초과이윤의 원천이 되는 현실을 부각함으로써 금융 공공성 강화를 사회 의제로 올려놓을 잠재력이 충분하다.

최근 1세기 역사에서 은행 횡재세 도입의 선구자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였음을 상기하는 것은 횡재세의 친시장적 성격 이해에 도움이 된다. 1981년 대처 총리 체제의 제프리 하우 재무부장관은 대형 은행들이 영국의 심각한 경기침체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하면서 은행의 무이자 당좌예금에 대해 2.5% 비율로 특별예산 부담금을 부과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hello@yonghyein.kr

〈필자〉용혜인 의원은 제21대 국회의원이자 기본소득당 원내대표다. 기본소득 실현 열망 하나로 기본소득당을 창당했고,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기본소득 공론화법'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을 대표 발의하며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의정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출산 이후에는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대표발의하는 등 임신·출산·육아·돌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의정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