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백지장도 혼자 들지 말자

임윤묵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임윤묵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한 나라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얼마나 수출하느냐는 그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0년대에 국가 인프라를 새롭게 건설하며 미래의 역동적 발전을 꿈꾸었다. 1970~1980년대에 간단한 봉제가공품 기반으로 수출을 시작했고, 중동지역 건설 붐을 기반으로 획득한 외화가 우리 산업의 마중물이 됐다. 이렇게 번 외화를 종잣돈으로 기업이 눈을 돌린 산업은 전자부품이었다. 지금은 반도체가 우리나라 대표 상품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사업이나 모든 일에 있어서 대표는 필요하지만 대표가 없을 때의 상황을 늘 대비하지 않으면 잘못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최근 정부가 반도체학과를 대학, 특히 공대에 주요 학과로 개설하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니 이렇게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반도체가 잘 팔리면 반도체학과를 개설하고 안 팔리면 반도체학과를 없애는 것은 기업의 부서를 신설하고 없애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전기전자공학부 내에 반도체 교육프로그램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도체는 전기전자공학의 작은 한 분야다. 필요에 따라 학문을 세분화해 오다가 또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으라고 할 땐 언제고 모을 만하니 하나의 작은 기술 분야를 뚝 잘라내 한 전문 분야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과연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새로 반짝이는 작품은 많은 실패를 경험한 작가의 고뇌와 시간의 흐름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작은 부분만 특화돼 계속 그 부분만을 만드는 것은 그 물건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역할과 그 작은 부분의 완성도를 올리는 역할은 하지만 결코 세상을 놀라게 하거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큰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할 때가 많다. 큰 그림 및 작은 그림의 비교가 이 문제와 일맥 상통하는 시사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작은 그림이 잘 그려져야 전체 그림이 살아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큰 그림을 알고 세세한 표현을 노력하는 경우다. 넓게 보지 못하면서 디테일에만 신경쓴 경우는 점점 더 디테일에만 강해지고 새로운 시도를 생각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두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처럼 자원이 한정된 나라에서는 좀 더 넓게, 좀 더 포괄적으로 문제를 바라 보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시도하려는 교육 과정의 세분화는 시대 요구에 잘 맞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또한 학문의 분류라는 것이 오랜 기간 시간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 왔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왜 그런 마이크로 형태의 학과를 만들지 않았는지 고민해 보고, 지금 이러한 학과를 만들 때 앞으로 여파가 어떠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반도체공학과를 만드는 것보다 공학 전반에 걸친 교육을 뒷받침하는 공학교육학과는 왜 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미국 대학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시도되고 있는 공학교육학과 제도는 어떤 점에서는 반대 의견을 쉽게 찾고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공학 교육이 미래 산업에 미칠 영향과 그 중요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적절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공학교육은 공학을 전반에 걸쳐 이해해야 하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세분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나의 움직임이 다른지, 잘못됐는지를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교육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 심도 있는 토론과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백지장도 함께 들면 혼자 드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임윤묵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yunmook@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