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통신 빅3 법칙을 깨려면

박준호 통신미디어부 기자
박준호 통신미디어부 기자

“모든 산업에는 시장을 주도하는 3개 핵심 기업이 있다.” 미국 경영학자 자그디시 세스와 라젠드라 시소디아는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상위 3사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빅3 법칙'을 제시했다. 3강 체제가 수익·안정성·고객후생 측면에서 최적의 구조며, 이는 시장이 효율성을 추구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조선, 유통, 배터리 등 주요 산업군이 이 법칙을 따른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사가 시장 매출의 98%를 점유하는 과점체제다. 이러한 빅3 구도는 20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산업 발전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부족하고, 소비자 편익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부가 제4 이통사 유치라는 칼을 빼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을 흔들 '메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제4 이통사가 빅3 법칙을 깨뜨리려면 어려움과 문제가 많다. 이통 사업은 매년 수조원대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장치산업이다. 자본력이 막대한 기업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당근책을 내놔도 뚜렷한 후보군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무엇보다 성장 여력이 부족하다. 최근 4년 동안의 통신사업자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8%에 그친다. 인구 대부분이 서비스에 가입, 추가 확장도 어렵다. 신규 사업자 진입이 경쟁 활성화로 이어지려면 시장이 성장세에 있어야 한다.

지금 통신시장에 필요한 것은 신규 사업자보다 규제완화다. 제4 이통사가 나오더라도 근본적인 시장 구조 개선이 없다면 빅3 체제에 변화가 일기 어렵다. 경쟁 촉진을 통해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렇다면 알뜰폰 육성과 단말기유통법 개정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알뜰폰 시장이 단순 재판매에서 벗어나 통신산업의 새로운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알뜰폰 도매제공 의무를 제도화해서 안정적 사업 기반을 조성하고 자체 요금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데이터 대량구매 상품도 활성화해야 한다. 또 업체 간 인수합병(M&A)을 유도, 규모의 경제를 도와야 한다. 알뜰폰 시장이 질적 성장하면 기존 이통 3사의 서비스 개선 여지도 커진다. 알뜰폰이 고착화된 통신 시장을 흔드는 메기가 될 수 있다.

단통법 개정은 소비자에게 좀 더 직접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줄 수 있다. 보조금 차등 지급을 막기 위한 단통법은 통신사 간 경쟁을 제한, 소비자에게 돌아갈 혜택을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 취지를 다시 따져봐야 할 때다.

이통 3사도 그동안 쌓아 온 네트워크와 가입자 바탕으로 부가가치 창출에 힘써야 한다. '탈통신'을 위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첨단로봇 산업에 자본과 기술을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동시에 공적 책무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장의 수익성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5G와 6G 혁신 성과가 국민과 산업에 골고루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합리적 이용 조건 제공과 투자를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