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포퓰리즘 쓰나미'

당정이 연일 협의회를 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원팀'임을 보여 주기 위한 액션이다. 또 '정책 엇박자'를 최소화하고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다. 이와 관련해 당·정 협의회와 민·당·정 협의회 등이 무려 네 차례나 진행됐다. 그러나 간담회 때마다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다. 인상 폭과 시점에 대한 진전된 논의는 없다.

인상 시점에 대한 언급은 '금기어'가 되어 가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 후 인상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점은) 말하지 않았다” “의견 수렴 단계다” “여건 문제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등 요리조리 답을 피하고 있다.

요금 인상을 반길 국민은 없다.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미 한 차례 학습 효과도 있었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 사태를 겪으며 여론이 악화한 것을 체감했다. 곧 다가올 여름의 '냉방비 폭탄'이라는 비난도 두려울 것이다. 국정 지지율이 부진한 현 상황에서 굳이 스스로 찬물을 끼얹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문재인 전 정부의 에너지 포퓰리즘을 맹비판했다. 그러나 어느덧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여당 지도부 내에서도 요금 인상 찬반 여부를 놓고 입장이 갈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인상안을 놓고 저울질할수록 내부 분열은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설득이 가장 용이한 적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다. 지난해 평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가격은 톤당 1053달러로, 2021년 평균가 550달러 대비 무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전 정권만을 탓하기에는 군색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LNG 수입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요금을 꼭 올려야 한다면 제때에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 계속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면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이대로 눈치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할 경우 더 큰 시한폭탄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전력산업 자체가 붕괴하고, 그 부담은 또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 당장 요금을 인상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을 거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 '고물가 속 국민 부담 최소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표심'을 의식한 '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럴 바에야 하루빨리 손을 떼는 게 당의 지지율을 위해 나은 선택이다.

최근 당정은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연장했다. 지난해 말부터 세 차례 연장돼 온 유류세를 여론 눈치 때문에 또 붙잡혔다. 한시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적용하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장기간 유류세 인하 조치를 하진 않는다.

갈 길이 멀다. 차일피일 눈치 보며 미룬다고 해서 에너지 공기업의 빚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한시적으로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래도 정부·여당이 할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이보다 앞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강력히 반대한 것이 국민의힘이다. 포퓰리즘 쓰나미는 비극의 시작이다. 결단이 필요하다.

[ET시선]'포퓰리즘 쓰나미'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