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민체감 선도형 초격차 연구성과, 연구기관 조직문화 혁신 병행돼야

백승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실장
백승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실장

지난 3월 1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1회 상공의 날'이 개최된 1974년과 현재 한국 경제를 비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기간 한국 경제구조는 농어업·상사·섬유산업 위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전자·금융산업으로 변화했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85배 성장하며 세계 10위권이 됐다. 1인당 GDP도 1974년 563달러에서 3만달러 이상으로 향상됐다.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 고도화에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경쟁력 확보, 이에 기반을 둔 수출 중심 경제전략의 역할이 매우 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이동통신 강국 실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고속철도 기술개발로 KTX-산천 및 KTX-이음 개통,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누리호 위성발사 성공 등 우리 기억과 생활 속에 그 성과가 생생하다.

최근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국민 체감 연구 성과 요구가 크다.

GDP 대비 R&D 투자 규모가 세계 최상위권임에도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하고, 코로나19 백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지 못한 책임을 출연연에 묻기도 한다. 대한민국 R&D 투자 100조 시대에 미치지 못하는 연구 생산성, 정부 R&D 대형성과가 최근에는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에서는 과학기술 R&D의 고투자·저효율을 '코리아 R&D 패러독스'로 표현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출연연 등 체계 개선·혁신을 요구한다.

물론 대한민국 R&D 투자 100조원, 2023년 정부 R&D 예산 30조원 시대에서 5조~6조원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는 출연연에 유독 집중된 책임 추궁이 다소 어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이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출연연이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대표한다는 공감대는 여전하며, 출연연은 그 책임과 역할을 계속 요구받고 있다.

현재 25개 출연연은 해당 기술 분야에서 국산화, 기술자립 등을 목표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기술 수준까지 대부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성과는 퍼스트무버 기술선도형 연구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우리 출연연의 R&D 지향점이 초격차 연구 성과, 수월성 중심의 과학기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수월성을 통한 초격차 연구성과,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 NST를 중심으로 출연연에서도 복합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학제간 융합연구사업, 월드 탑클래스 연구실 구축, 국가전략기술 중심의 선택과 집중 등이 이미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과거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연구목표, 이미 존재하는 정답과 성공사례를 추구하는 연구 관행, 제조공정 감독하듯 점검하는 통제와 이에 따라 성공하기 좋은 과제로 실패가 없는 연구, 논문·특허 중심의 단편적·가시적 실적 치중, 부서·기관 간 깊게 형성된 장벽으로 사일로 현상 등 그동안 형성된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선도형 연구를 통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 도출, 그 누구도 이런 지향점에 이견이 없지만 우리 연구 현장에서 이를 위한 출연연 연구자들의 공유된 인식과 가치관, 이를 실천하는 행동양식이 그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요구된다.

연구 수월성에 중점을 두는 연구목적기관으로서의 관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기관의 경영 목표와 기관평가, 연구기획, 예산편성, 기관 운영 전반에서 '문제를 안 만드는 평범함, 보편성'보다 '최고 성과 도출 촉진, 수월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관 내부, 기관 간 상호 협력, 그 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며 더 큰 성과와 연결되도록 유인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성공사례를 만들어서 확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초격차 연구 성과, 수월성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체계와 배 아파하지 않는 '엔비프리'도 요구된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이 공유한 가치체계·생활양식이며, 다양한 인공물로 표현된다.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구성원이 함께 인식하기 위한 다소 의도적인 활동으로 인공물을 조성해야 한다. 다양한 소통 활성화, 조직문화 혁신 제도 개선, 비전과 목표 재정립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2019년부터 과학기술 출연연은 자발적으로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 매년 정기포럼과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23년 현재 NST 산하 25개 모든 출연연을 포함해 총 29개 기관이 함께하고 있다. 초격차 연구 성과 지속을 가능하게 도출하는 기반으로서 조직문화를 함께 고민하고 혁신하는 출연연의 이러한 자발적 협력과 실천 노력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승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기획실장 baeksh@krri.re.kr